"아니, 안 올 거란다." 조는 말했다.
우리의 시선은 서로 마주쳤다. 그 순간 나를 ‘나리‘라고 부르던 그 모든 어색함이 그의 남자다운 가슴에서 전부 녹아 없어지면서 그는 나에게 손을 내밀었다.
"핍, 이보게 친구, 인생이란 서로 나뉜 수없이 많은 부분들의 접합으로 이루어져 있단다. 그래서 어떤 사람은 대장장이고 어떤 사람은 양철공이고 어떤 사람은 금 세공업자고, 또 어떤 사람은 구리 세공업자이게끔 되어 있지. 사람들 사이에 그런 구분은 생길 수밖에 없고 또 생기는 그대로 받아들여야 하는 법이지, 오늘 잘못된 뭔가가 조금이라도 있다면 그건 다 내 탓이다.
너와 난 런던에서는 함께 만나지 말아야 할 사람들이야, 사적(진的)이고 익숙하며, 친구들 사이에 잘 알려져 있는 그런 곳 외의다른 어떤 곳에서도 우린 만나지 말아야 할 사람들이야. 앞으로넌 이런 옷차림을 하고 있는 날 다시는 만날 일이 없을 텐데, 그건 내가 자존심이 강해서가 아니라 그저 올바른 자리에 있고 싶어서라고 해야 할 거야. 난 이런 옷차림과는 전혀 어울리지 않아. 난 대장간과 우리 집 부엌과 늪지를 벗어나면 전혀 어울리지않아, 대장장이 옷을 입고 손에는 망치, 또는 담배 파이프라도들고 있는 내 모습을 생각하면 너는 나한데서 지금 이런 차림의 반만큼도 흠을 발견하지 못할 거야. 혹시라도 네가 날 다시 만나고 싶은 일이 생긴다면, 그땐 대장간에 와서 창문으로 머리를 들이밀고, 대장장이인 이 조가 거기서 낡은 모루를 앞에 두고 불에 그슬린 낡은 앞치마를 두른 채 예전부터 해 오던 일을 열심히 하고 있는 모습을 바라보도록 하거라. 그러면 넌 나한테서 지금 이런 차림의 반만큼도 흠을 발견하지 못할 거다. 난 끔찍이도 우둔한 사람이지만, 오늘 이 일에서는 마침내 어느 정도 올바른 결론을 뽑아 냈다고 생각한다. 그럼 이보게, 하느님의 축복을 빌겠네. 사랑하는 내 친구, 핍, 하느님의 축복을 빌겠네!"
- P411

내가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그 숙녀가 고개를 들더니 짓궂은 표정을 띤 눈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그 순간 나는 그게 에스텔러의 눈이라는 것을 알아보았다. 그러나 그녀는 너무나 많이 변했고, 너무나 많이 아름다워졌으며, 너무나 많이 여자다워져 있었고, 남자의 찬미를 일으키는 그 모든 점에서 너무나 훌륭하게 성숙해 있었다. 그에 비하면 나 자신은 달라지거나 나아진 점이 전혀 없는 것처럼 느껴졌다. 그녀를 바라보는 동안 나는, 내가 옛날의 그 천하고 상스러운 소년으로 다시 무기력하게 되돌아가고 말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 나를 사로잡은 그 거리감과 차이감이란! 그리고 그녀를 둘러싼 그 도저히 올라갈 수 없을 높은 벽이란!
- P431

예전과 마찬가지로 거만하고 제멋대로였지만 그녀는 그 성질들을 자신의 아름다움에 너무나 밀접하게 종속시켜 놓았으므로 그것들을 그녀의 아름다움과 떼어서 생각한다는 것은 불가능한 동시에 부자연스러운 일이었다.
적어도 나는 그렇게 생각했다. 진실로 말하건대, 내 소년기를 괴롭게 만들었던 돈과 신분에 대한 그 모든 비참한 동경과 그녀의존재를 분리하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었다. 그리고 나로 하여금처음으로 집과 조를 창피해하게 만들었던 그 모든 빗나간 갈망들과 그녀의 존재를 분리하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었다. 또한 빨갛게 달아오른 화덕의 불길 속에서 쇳덩이를 꺼낼 때나 그것을모루에 대고 두드릴 때 그녀의 얼굴을 떠올리곤 하던 것과, 밤의 어둠 속에서 그녀의 얼굴이 문득 나타나 대장간의 나무 창문으로 들여다보고는 휙 사라져 버렸다고 생각하던 것 같은 모든 상상들과 그녀의 존재를 분리하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었다. 요컨대 과거나 현재에서 내 삶의 가장 깊숙한 부분과 그녀를 떼어서 생각하는 것은 나에게 불가능한 일이었다.
- P433

미스 해비셤은 내 목을 한 팔로 감더니, 의자에 앉은 채로 내머리를 자기한데로 바짝 끌어당기며 말했다. "저 애를 사랑하거라. 사랑해, 저 앨 사랑해! 저 애가 너를 어떻게 대하느냐?"
내가 대답하기도 전에 (물론 내가 그 어려운 질문에 과연 대답할수 있었을지 몹시 의심스럽지만 말이다.) 그녀는 반복해 말했다.  "저애를 사랑하거라, 사랑해, 저 앨 사랑해! 저 애가 너에게 호의를보이면 저 앨 사랑하거라. 저 애가 너에게 상처를 주더라도 저앨 사랑하거라. 저 애가 네 심장을 갈기갈기 찢어 놓더라도, 그리고 나이를 먹고 강해질수록 오히려 그 상처가 더욱 깊이 찢어질지라도 저 애를 사랑하거라, 사랑해, 저 앨 사랑해!"
나는 그녀가 이 말을 하면서 보인 것 같은 그런 격정적인 열망을 결코 본 적이 없었다. 나는 나 목을 휘감은 그녀의 야윈 팔근육이 그녀를 사로잡은 열정 때문에 팽창하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내 말 잘 듣거라, 핍! 내가 저 아일 양녀로 삼은 것은 사랑받게 하기 위해서야. 내가 저 아일 키우고 교육한 것은 사랑받게하기 위해서야. 내가 저 아이를 양육해서 현재의 저 모습으로 만든 것은 바로 저 아이가 사랑받도록 하기 위해서야. 저 아이를 사랑하거라!"
- P440

문득 호주머니에 들어 있는 접힌 종이쪽지 하나가 내 주의를 끌었다. 꺼내서펴 보니 조한테서 받았던, ‘로시우스 같은 명성을 지닌 유명한지방 아마추어 연기자에 관련된 연극 광고지였다. "아니, 이런!" 나는 나도 모르게 큰 소리로 덧붙였다. 이건 바로 오늘이잖아!"
이로 인해 우리의 화제는 순식간에 바뀌고 말았는데, 우리는 곧 이 연극을 보러 가기로 결정했다. 그리하여 나는 먼저 허버트의 애정 문제에 있어서 현실적이든 비현실적이든 모든 수단을 다해 그를 격려하고 지원하겠다고 맹세했고, 이어 허버트도 자신의 약혼녀가 이미 내 이야기를 많이 들어서 나를 잘 알고있으며 곧 그녀에게 나를 소개해 주겠다고 말했다. 그리고 우리는 둘이 서로 믿고 속마음을 털어놓은 것에 대해 뜨겁게 악수를 나눈 다음, 촛불을 끄고 난롯불을 잘 지펴 놓고 문을 잠가 놓은뒤 웝슬 씨와 덴마크를 찾아 밖으로 달려 나갔다.
〈2권에서 계속> - P46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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