니체는 고통을 좋은 삶의 구성요소로, 배움의 수단으로 여겼다. "오로지 고통만이 지식으로 이어진다." 니체는 말했다. 고통은 청하지 않았지만 반드시 답해야하는 부름이다. 우리는 자신을 마비시킴으로써 그 부름에 답하는가, 아니면 쇼펜하우어의 제안처럼 예술과 금욕으로 숨어드는가? 아니면 우리는 이 세상에 더욱 깊이, 심지어 맹목적으로 참여함으로써 고통에 답하는가? 니체는 이 마지막 선택지를 와인과 연극과 삶을 사랑한 그리스 신의 이름을 따서 디오니소스적 방식이라 칭했다. 니체는 말했다. "나는 반드시 필요한 것을 아름다운것으로 보는 법을 앞으로 더욱더 배우고 싶다. 그렇게 나는 세상을 아름답게 만드는 사람이 될 것이다." 고통에도 불구하고 인생을 사랑하지 말라고, 바로 그 고통으로 말미암아 인생을 사랑하라고, 니체는 말한다. - P385
만약 우리의 삶이 (아니,온 우주가) 실제로 되풀이된다면 우리는 무엇을 통제할 수 있는가? 니체는 우리가 통제할 수 있는 것은 행동이 아니라 태도라고 생각했다. 니체 철학의 핵심에는 "완벽한 불확실성의 세계에서 자신의 방향성을 바꾸려는 시도"가 있었다. 보통 우리는 불확실성에서 도망쳐 확실성을 향해 달려간다. 니체는 그것이 불변의 사실이 아니라고 말한다. 그것은 가치이며, 우리가 가치를 부여하는 모든 것은 재평가가 가능하다. - P387
스토아철학은 미래의 고난을 상상하는 것은 미래의 고난에 대해 걱정하는 것과는 다르다고 말한다. 걱정은 모호하고 애매한것이다. 하지만 고난을 예상하는 것은 구체적인 행위이며, 더 구체적일수록 좋다. 나는 재정난을 겪는 모습을 상상한다‘ 보다. 집과 차, 그동안 모은 가방 전부를 잃고 다시 어머니 집에서 살게 되는 모습을 상상한다‘가 더 좋다. 에픽테토스는 큰 도움이 되는 또 다른 제안을 한다. 네가 말하고, 듣고, 걷고, 숨쉬고, 삼키는 능력을 잃었다고 상상해보라. 최악의 시나리오를 상상함으로써 우리는 미래의 고난이 가진 영향력을 빼앗고 지금 가진 것에 더욱 감사할 수 있다. 예상한 대로 대재앙이 닥쳤을 때 스토아주의자들은 무화과나무에 무화과가 열리거나 조타수가 맞바람을 만날 때처럼 태연하다고, 에픽테토스는 말한다. 예상된 고난은 힘을 잃는다. 구체적으로 표현된 두려움은 그 크기가 줄어든다. 최소한 스토아철학은 그렇다고 말한다. - P417
스토아철학의 핵심에는 깊은 숙명론이 있다. 우주는 내가 쓰지않은 대본에 따라 움직인다. 언젠가는 직접 연출을 하고 싶겠지만, 포기하는 게 좋다. 우리는 연기자다. 자기 역할을 받아들여야한다. 에픽테토스는 "내가 나이팅게일이라면 나는 나이팅게일의역할을 연기할 것이다. 내가 백조라면 백조의 역할을 연기할 것이다"라고 말한다. 다른 역할을 간절히 원해봤자 아무 소용이 없으며 우마차에 끌려가는 개처럼 불필요한 고통을 겪게 될 뿐이다. 스토아철학은 "지금 가진 것을 욕망하는 법"을 배워야 한다고 말한다. - P4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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