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할머니의 고향 마을을 집집마다 돌아다니면서 남은 이들의 얼굴을 움켜쥐고 소리를 지르는 상상을 하곤 한다. "뭔가 해야 해요!" 나는 우리 가족이 정당한 몫보다 열배나 많은 에너지를 소비하고 있음을 알고, 탐욕스러운 생활 방식을 대표한다는 것도 알고, 이런 생활방식이 지구를 파괴하고 있다는 사실도 안다. 이런 집에서 내 후손이 내 얼굴을 움켜쥐고 "뭔가 해야 해요!"라고 고함치는 광경을 상상할 수도 있다. 그래도 무언가를 하게 만드는 믿음이 생기지는 않는다. 그래서 나는 아무것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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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의 나지막한 울음소리를 들은 것은 흥분 상태에서 나온 힘 덕분이라고 설명할 수도 있다. 그런데 나에게 어떤결함이 있기에 나는 불안한 지붕, 그 지붕 위의 불안한 하늘은 무시해 버리고 살고 있는 걸까? 우리 할머니가 살던 마을의 유대인들은 살갗에 파리가 앉으면 틀림없이 때려잡았을 것이다. 내가 허술한 지붕과 재앙을 몰고 오는 기후를 무시하고 그냥 살듯이, 할머니의 마을 사람들도 나치가 오는줄 알면서 대부분은 그냥 마을에 남았다. 우리의 경보 체계는 개념적인 위협을 포착하지 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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