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이 박쥐에게
당신이 떠난 텅 빈 동굴을 생각하며 이 편지를 씁니다. 당신이 아직 동굴에 머물고 있던 시절에 방문했던 기억이 아직 생생합니다. 당신의 몸은 아직 냉기를 유지하고 있었고, 그 냉기는 곧 동굴의 냉기였습니다. 체열體熱을 스스로 생산할 수 있는 포유류의 일원임에도, 겨울이면몸의 온도를 낮춰 겨울잠을 자는 당신, 저는 당신을 굳이 깨울 생각을 하지 않고 가만히 자는 모습을 들여다보다 나왔답니다. 지금 그 때의 기억을 되살려 당신에게 그리움의 편지를 씁니다. - P19
한때 과학자들은 당신의 두 가지 대표 능력 중 어떤 것이 먼저 생겼을까 논쟁을 했습니다. 그도 그럴 것이 당신의 조상 화석들은 지금의 당신 모습과 별 차이가 없었거든요. 날개나 초음파를 내는 구조 둘 중 하나가 없는 화석이 나와야어느 것이 먼저 나타났는지 알 수 있을 텐데, 무려 5250만 년전 화석까지 거슬러 가도 지금의 당신과 다른 점이 없었거든요. 세상에! 당신은 ‘살아있는 화석‘이었던 셈이에요. 논쟁은 2008년, 새로운 화석을 분석한 연구 결과가 나오며 일단락 됐습니다. 그 해 2월 과학 학술지 <네이처>의 표지를 장식한 당신의 조상 ‘오니코닉테리스 핀네이 ‘의 골격 화석은, 지금의 박쥐와 거의 비슷한 날개막 골격 구조를 지니고 있었습니다 (뒷발이 좀더 크다는 차이는 있었습니다). 그런데 중요한 차이가 발견됐습니다. 두개골의 구조를 분석한 결과, 초음파는 내지 못했다는 사실이 밝혀졌거는요. 초음파를 내고 반사음을 받아들이려면 그 역할을 담당할 기관이 머리에 있어야 하고, 기관의 흔적이 두개골에 남아 있어야 합니다. 하지만 이 화석에서는 그 흔적을 발견할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과학자들은 알게 됐습니다. 최초의 당신은 먼저 하늘을 날았고 초음파는 내지 못했다고요. 당신이 초음파를 내게 된 것은 좀 더 시간이 지난 뒤였다고요. - P37
잠시 후 다시 또 한 마리의 애벌레를 끌고 모습을 드러냈습니다. ‘영차! 한 데 힘을 모아 날아오르더니, 이번에는 1.5m 정도 떨어진 숲에 내다 버리는 데 성공했습니다. 애벌레를 먼 데 버린 데 성공한 당신은 다시 벌통으로 돌아왔습니다. 붕붕붕, 날갯짓 소리를 내면서요. 저는 그 순간의 날갯짓 소리를 잊을 수 없습니다. 그저 날개의 진동소리였는데, 마치 울음소리와 같이 슬펐습니다. 애지중지 키우던 애벌레를 제 손으로 내다 버리는 비통한 심정이 소리에서 전해왔습니다. 당신이 그렇게 극단적인 선택을 한 것은 바이러스성 유행병 때문이었죠. 2010년부터 전국을 휩쓸던 ‘낭충봉아부패병‘ 이라는 전염병 때문에 동양꿀벌의 상당수가 집단 폐사했습니다. 당시 국립수의과학검역원이나 농촌진흥청의 발표에 따르면 전국 동양꿀벌 군집의 약 75~77%에 해당하는 31만 7000군 정도가 폐사했습니다. 한국토봉협회는 그보다 심가하다며 98%가 폐사했다고 주장했고요. - P56
하지만 서양에서는 좀 더 갑갑한 일이 벌어진모양입니다. 이유를 모르는데 당신들이 사라져 버리는 현상이 여러 해째 반복되고 있거든요. ‘봉군붕괴현상 蜂群崩壞現象‘이라고 불리는 기묘한 현상입니다. 이 현상은 2006년 11월 처음 보고됐습니다. 그런데 정말 이상합니다. 벌들이 죽는 것도 아니고, 어느날 갑자기 그냥 사라집니다. 마치 인기 소설가 무라카미 하루키의 소설에서 인물들이 어느 날 갑자기 온데간데없이, 밑도끝도없이 사라지는 것처럼요. 벌들은 벌집을남겨 놓은 채, 마치 집단 가출이라도 하듯 사라집니다. 당신은 벌집에 애벌레를 키우고, 그 안에 꽃가루와 꿀을 저장하면서 삽니다. 벌통을 건드리기라도 하면 온 벌들이 달려들어 벌집을 지킵니다. 장소에 대한 애정과 집착이 강합니다. 그런데 하룻밤 사이에 벌집을 버리고 사라지다니요. 이게 무슨 변괴인가요. - P6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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