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 터치다운 패스를 성사시키는 장면을 보러 간다. 그래도 경기장은 공적 성격을 띠므로 관중들은 최소한 몇 시간 동안 같은 장소에 함께 있다는 의식과 시민으로서의 자부심을 느낀다. 하지만 ‘명소‘라는 의미가 옅어지고 광고판 같은 의미가 부각되면서 경기장이 지녔던 공적인 성격은 희미해진다. 경기장이 관중들 마음에 불어넣었던 사회적 결속과 시민적 감성 역시 마찬가지다. 기업의 명명권과 더불어 호사스러운 스카이박스(경기장 높이 위치한 고급 관람석 - 옮긴이) 거래가 확산되면서 스포츠 경기에 담겼던 시민정신은 훨씬 더 심하게 잠식당하고 있다. - P238
호화 특별관람석에서 나오는 수입은 팀에 훌륭한 재원이었으므로 1990년대에 경기장 건축을 부추겼다. 하지만 비판가들은 사람들이 지위의 높고 낮음에 상관없이 한데 섞여 스포츠 경기를 관람하던 관습이 스카이박스의 등장으로 파괴되었다고 비난했다. 조너선 콘(JonatthanCohn)은 이렇게 썼다. "스카이박스의 은밀하고 경망스러운 특성은 미국 사회의 본질적인 결점, 즉 자신을 다른 사람들과 분리시키려는 엘리트들의 열망과 필사적인 욕구를 부추긴다. 한때 지위 불안의 해독제로 작용했던 프로 스포츠가 지금은 오히려 그 질병에 지독하게 걸려있다" - P239
스카이박스의 윤리적 문제를 둘러선 가장 최근의 논쟁은 미국 최대규모의 대학 경기장을 소유한 미시간대학교에서 벌어졌다. 빅 하우스(Big House)로 알려진 미시간 경기장에는 1975년 이후로 매년 홈경기가 열릴 때마다 10만 명 이상의 팬이 모여든다. 2007년 대학 이사회가학교의 상징인 스타디움에 스카이박스 증축을 포함하여 2억 2600만달러가 들어가는 보수계획을 검토하자 일부 동문들이 항의했다. 한 줄업생은 이렇게 주장했다. "대학 미식축구, 특히 미시간 미식축구의 위대한 점 중 하나는 자동차 공장의 노동자이건 백만장자이건 모두 함께앉아 같은 팀을 응원할 수 있는 훌륭한 공공장소라는 것이다. "빅 하우스를 구하자(Save the Big House)"라는 구호를 내건 모임은호화로운 특별석 증축 계획을 철회하라는 탄원서를 모아 대학교 이사회를 설득했다. 비판자들은 이렇게 말했다.
125년 동안 믿음직스런 미시간 팬들은 나란히 함께 서서, 함께 추위에떨었고, 함께 응원했으며, 함께 승리했다. 호화로운 박스석은 그러한 전통에 완전히 반하는 것으로, 미시간 펜을 소득 수준으로 가르고 그들의화합을 해칠 뿐 아니라 미시간 팬이라면 나이와 배경에 상관없이 누구나 경기를 함께 관전하며 느끼는 흥미와 동지애를 훼손시킨다. 미시간경기장에 호화 박스석을 건립하겠다는 생각은 미시간대학이 전념한 평등주의 이상에 위배된다.
하지만 이러한 저항은 실패하고 말았다. 이사회는 5 대 3으로 미시간 경기장에 81개의 호화 특별석을 증축하기로 결정했다. - P241
학교에 범람하는 상업화는 두 가지 면에서 부패했다. 첫째, 기업의 후원을 받아 제작된 교과자료의 대부분은 편견과 왜곡, 피상적 내용으로 가득하다. 놀랄 것도 없이, 소비자 연맹의 연구 결과에 따르면 기업에서 후원을 받아 제작된 교육자료의 80퍼센트가 후원자의 제품이나관점에 호의적인 방향으로 기울어 있다. 둘째, 설사 기업 후원자가 나무랄 데 없이 훌륭한 질의 객관적 교육도구를 제공한다 해도, 상업적광고는 학교의 목적에 어긋나기 때문에 여전히 학교에 유해할 것이다. 광고는 사람들에게 무언가를 원하고 자신의 욕구를 충족시키라고 부추긴다. 하지만 교육은 자신의 욕구를 비판적으로 돌아본 후에 욕구를 자제하거나 향상시키라고 가르친다. 광고의 목적은 소비사를 끌어들이는 것인 반면, 공립학교의 목적은 시민을 양성하는 것이다. - P272
내가 말하려는 요점은 시장과 상업이 재화의 성질을 바꾸는 상황을 목격했다면 시장에 속한 영역은무엇이고 시장에 속하지 않은 영역은 무엇인지 의문을 던져야 한다는것이다. 그리고 재화의 의미와 목적, 재화를 지배해야 하는 가치를 놓고 깊이 사고하지 않고서는 이러한 질문에 대답할 수 없다. 그러다 보면 불가피하게 좋은 삶에 상충되는 개념에 관해 깊이 생각하기 마련이다. 이는 우리가 가끔은 발을 들여놓기를 두려워하는 영역이다. 우리는 반대에 부딪힐까봐 두려워서 자신의 도덕적 · 정신적 확신을 공공의 장에 내보이기를 주저한다. 하지만 이러한 문제에 맞서지 않고 뒷걸음질 친다고 해서 문제가 미해결 상태로 머물러 있지는 않는다. 그렇게 함으로써 우리는 시장이 우리 대신 결정을 내리도록 허용하게되는 셈이다. 이것이 바로 지난 30년 동안 우리가 얻은 교훈이다. 시장지상주의 시대는 공공 담론에 도덕적·정신적 실체가 상당히 부족했던시대와 일치한다. 시장을 제자리에 놓을 수 있는 유일한 희망은, 우리가 소중하게 생각하는 사회 관행과 재화의 의미에 관해 솔직하게 공개적으로 숙고하는 것이다. - P274
민주주의는 완벽한 평등을 필요로 하지는 않지만 시민에게 공동체적 생활을 공유할 것을 요구한다. 그러려면 배경 · 사회적 위치 · 태도 · 신념이 서로 다른 사람들이 매일 생활하며 서로 마주하고 부딪치는 것이중요하다. 그래야 서로의 차이를 견뎌내고 이를 놓고 협상하고 공공선에 관심을 쏟는 법을 배울 수 있다. 따라서 결국 시장의 문제는 사실상 우리가 어떻게 함께 살아가고 싶은가에 관한 문제다. 모든 것을 사고팔 수 있는 사회에서 살고 싶은가? 시장에서 거래되지 않고 돈으로도 살 수 없는 도덕적 · 시민적 재화는 존재하는가? - P27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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