각 반박이 추구하는 도덕적 이상은 서로 다르다. 공정성과 관련한 논거에서 추구하는 도덕적 이상은 동의, 좀 더 정확하게는 공정한 조건하에 이루어지는 동의다. 시장을 이용한 재화 분배에 찬성하는 주요 논거중 하나는 시장이 선택의 자유를 존중한다는 것이다. 시장은 다양한 재화를 주어진 가격에 팔지 말지를 사람들 스스로 선택할 수 있게 한다. 하지만 공정성에 관한 반박에서는 이러한 선택이 진정으로 자발적인것은 아니라고 지적한다. 사람들이 절박할 정도로 가난하거나 공정한조건으로 거래할 능력이 부족하다면 시장 선택은 자유롭게 이루어지지 않는다. 따라서 시장 선택이 자유롭게 이루어졌는지 판단하려면 어떤 불평등한 사회 조건이 작용하여 유의미한 동의를 훼손하는지 따져봐야 한다. 즉 어떤 지점에서 불평등한 교섭력이 사회적 약자를 강압하고 그들이 하는 거래의 공정성을 해치는가를 고려해야 한다. - P158
그렇다면 스위스 마을에는 무슨 일이 일어난 것일까? 보상금을 받을때보다 받지 않을 때 핵 폐기장 유치를 받아들이는 사람이 많은 이유는무엇일까? 일반적인 경제 분석에 따르면, 보상금을 지급하면 부담을 기꺼이 수용하려는 경향이 줄어들지 않고 오히려 늘어나야 한다. 하지만 연구를 수행했던 두 경제학자는 공공선에 헌신하는 태도를 포함한 도덕적 사고 때문에 가격효과는 흔들릴 수 있다고 지적한다. 다수의 마을사람들에게 핵 폐기장을 자발적으로 받아들이겠다는 태도는 공공정신, 즉 국가 전체가 핵에너지에 의존하고 있으며 핵 폐기물이 어딘가에는묻혀야 한다는 인식을 반영한 것이었다. 마을 주민들은 만약 자신들이속한 지역사회가 가장 안전한 저장 장소라면 그 부담을 기꺼이 감당할의지가 있었다. 이렇듯 시민의 의무를 다하겠다는 분위기에서 마을 주민에게 보상금을 지급하겠다는 제의는 찬성표를 얻기 위한 뇌물처럼느껴졌다. 실제로 금전적 제안을 거절했던 주민의 83퍼센트는 자신들은 뇌물에 매수당하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 P162
하지만 이러한 논리로는 시민의 희생이 가진 의미를 놓친다. 대중에게 미치는 손해와 불편에 대한 보상으로는 개인에게 돌아가는 현금보다 공공재가 적합하다. 공공재는 폐기물 처리장 유치 결정으로 시민이 져야 하는 부담과 희생을 인정한다는 표시이기 때문이다. 거주지에 활주로나 쓰레기 매립지를 받아들이는 대가로 주민에게 지불하는 보상금은 자칫 지역사회의 훼손을 묵인하는 데 대한 뇌물로 비칠 수 있다. 하지만 새로 건립한 도서관 · 놀이터 · 학교 등은 공동체를 강화하고 공공정신을 존중함으로써 시민의 희생을 동일한 가치로 보상한다. - P164
내재적으로 가치 있다고 생각하는 활동에 참여하고 있는 사람들에게 돈을 지급하면 그들의 내재적 흥미나 헌신을 ‘밀어내거나‘ 그 가치를 떨어뜨려 동기유발을 약화시킬지 모른다. 일반 경제학 이론은 성질이나 출처에 상관없이 모든 동기를 선호로 해석하고 그것이 모두 부가적이라 추정한다. 하지만 이러한 생각은 돈의 잠식 효과를 간과한 것이다. 밀어내기 현상은 경제학에서 커다란 의미를 차지한다. 내재적 동기유발이나 도덕적 헌신이 중요한 교육 · 건강 · 직장 · 자발적 단체 · 시민생활 및 기타 환경의 많은 측면에 시장 메커니즘과 시장논리를 적용하는 것에 의문을 제기한다. 스위스 핵 폐기장 문제의 연구자인 브루노프레이와 경제학자 레토 예겐(Reto Jegen)은 밀어내기 현상을 이렇게정리한다. "밀어내기 효과는 경제학에서 가장 중요한 이례적 현상이라고 할 수 있다. 금전적 인센티브를 인상하면 공급이 늘어난다는 가장 근본적인 경제학 법칙‘을 거스르기 때문이다. 밀어내기 효과가 작용하는 경우에는 금전적 인센티브를 인상하면 공급은 늘지 않고 오히려 감소한다." - P17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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