폴리스라는 단어는 그저 ‘도시‘나 ‘도시국가‘ 라는 뜻으로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리스인들이 이해한 이 단어의 진정한 의미는 깔끔하게 번역하기 어렵다. 간단히 말해, 폴리스는 도시 환경 속에서 조직된 자유 (남성) 시민들의 정치적·종교적·군사적·경제적 공동체였다.
- P128

공공 공간은 경쟁의 공간이다. 메소포타미아의 대도시, 중세의 군주국, 현대의 공산국가와 같은 독재 체재에서, 도시 안의 빈 땅은 주로 혹은 전적으로, 국가 권력과 군사력을 과시하는 장소, 즉 참여의 장소가 아닌 구경거리의 현장으로 쓰여왔다. 유교 영향권의 도시들에서 공공 공간은 거룩한 곳, 의무적 의식 절차에 따라 운영되는 곳이었기 때문에 일상의 사회적 상호작용이 일어날 여지가 거의 없었다. 조선 시대(1392∼1897년)에 평민들은 한양의 간선도로인 종로에서 말을타고 지나가는 양반들과 마주칠 때마다 절을 해야 하는 상황에 부아가 치민 나머지 종로 바로 옆에 나란히 나 있는 좁은 골목으로 발길을옮겼다. 피맛골, 즉 ‘말을 피하는 거리‘로 알려진 그 비좁은 길은 군데군데 들어선 식당과 상점 덕분에 사람들이 모여 얘기하고 어울리는장소였으며 한양이라는 대도시의 공식적인 부분을 관할하는 규칙에서 벗어난 비공식적 공공 공간이 되었다. 거리 활동은 도시가 지닌 공공적 성격의 필수요소다. 그러나 지금까지 도시의 거리는 서로 다른 용도 간의 긴장 관계로부터 자유롭지못했다. 거리는 교제와 사업, 앉아 있기, 산책과 놀이의 장소일까? 아니면 원활한 교통과 사회적 통제를 위한 장소일까?  - P133

먼 훗날에 키케로 Cicero는 소크라테스가 "미덕과 악덕을 탐구함으로써" 철학을 "일상생활"에 적용했다고 언급했다. 인간 조건을 둘러싼일반적 진리는 "평범한" 사람들의 복잡하게 뒤엉킨 삶에서 발견될 수있었다. 거리와 시장에서는, 특히 집 밖에서의 교제 문화가 있는 아테네의 비좁고 북적이는 거리와 시장에서는 바로 그런 종류의 통찰에 이를 수 있었다.  - P140

아테네와 알렉산드리아는 서로 매우 다른 두 도시의 가장 적절한 사례다. 아테네라는 도시의 풍경의 불규칙적인 외곽선과 개방적인 문하는 길거리에서 토론과 논쟁이 벌어질 수 있는 밑바탕이 되었다. 플라톤에 의하면, 소크라테스는 철학이라는 것이 동료 시민들과 아테네의 공공장소에서 나누는 대화를 통해 이뤄지는 행위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그 어떤 내용도 글로 남기지 않았다고 한다. 이와 대조적으로 거리가 합리적이고 직선적으로 설계된 알렉산드리아는 엄격하게 관리된 곳으로, 관념이나 사상이 도시 생활과 유리된 채 제도 속에 갇혀있던 곳으로 묘사된다. 아테네가 자발적이고 실험적이었다고 한다면 알렉산드리아는 백과사전적이고 순응주의적인 사고방식을 지니고 있었다고 볼 수 있다. 아테네는 철학과 정치학, 연극 분야에서 개가를 올렸고, 알렉산드리아는 과학, 수학, 기하학, 역학, 의학 등의 분야에서 성공을 거뒀다.
- P153

목욕을 타락과 퇴폐를 부추기는 관습으로 여기는 태도는 목욕에 로마 제국의 쇠망의 씨앗이 있다고 생각한 여러 세대의 역사가들에게 영향을 미쳤다. 황제들이 빵과 서커스라는 넉넉한 선물을 통해, 그리고 정확히 그런 선물의 범주에 속하는 웅장한 공중목욕탕을 통해 로마인들을 순종과 복종의 늪에 빠트렸다는 설이 있다. 그러나 우리는 공중목욕탕을 이용하는 관습을, 과거의 로마인들이 그랬듯이, 도시 문명의 정점을 찍는 행위로 바라볼 수도 있다. 청결함은 로마인과 상스럽고 씻지도 않는 야만인을 가르는 기준이었다. 무엇보다 목욕은로마인이 바라보는 청결함, 즉 세련된 것, 고상한 것, 새로운 것의 의미를 규정하는 요소였다. - P17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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