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루크에 당도하기 한참 전에 나그네는 도시의 존재를 알아차리게되었을 것이다. 우루크 사람들은 주변 지역을 경작했고, 그 시골 지역을 이용해 필요한 부분을 채웠다. 인공 수로로 물을 대는 수천 제곱킬로미터 넓이의 들판에서는 대도시 우루크를 먹여 살리는 밀과 양, 대추야자 그리고 일반 주민들이 마시는 맥주의 원료인 보리가 자랐다.
무엇보다 놀라운 것은 사랑과 전쟁의 여신 에안나 Eama와 하늘의신 아누 , 에 바친, 우뚝 솟은 신전들이었다. 신전들은 도시 높은 곳의 넓은 토단 위에 세워져 있었다. 피렌체의 종탑과 반구형 건물 혹은21세기 상하이의 마천루 숲처럼 신전들도 대단한 볼거리였다. 석회석에 석고 반죽을 덧칠해 만든 아누의 거대한 백색 신전 White Temple은 현대의 여느 마천루만큼 햇빛이 눈부시게 빛났다. 백색 신전은 주변의평원을 밝히는 봉화처럼 문명과 세력의 메시지를 뿜어냈다.
고대 메소포타미아인들에게 우루크는 자연에 대한 인간의 승리를 대변했다. 그 고압적인 인공의 풍경은 명명백백한 승리의 증거였다. 곳곳에 성문이 나 있고 돌출형 망루가 솟아 있는 성벽은 둘레가 9킬로미터, 높이가 7미터였다. 성문을 거쳐 안으로 들어오자마자 그곳주민들이 어떻게 자연을 상대로 승리를 거뒀는지 알 수 있었다. 도시주변에는 과일과 약초, 채소가 자라는 깔끔한 정원이 있었다. 대규모의 용수로망을 통해 유프라테스 강의 물이 우루크의 심장부까지 흘러들었다. 지하에 체계적으로 매설된 토관을 통해서는 수만 명의 주민들이 배출하는 폐수가 성벽 밖으로 빠져나갔다. 정원과 대추야자는 자연스레 도시 중심부에서 밀려났다. 창문이 없는 조그만 집이 빼곡히 들어선, 좁고 구불구불한 미로 같은 거리와 골목은 무척 갑갑하게보였을 것이다. 이렇듯 도시 안에는 공터가 거의 없었다. 하지만 그런지면 구획은 비좁은 거리와 촘촘히 들어선 집 덕분에 생기는 그늘과산들바람이 메소포타미아의 뜨거운 햇볕의 위력을 잠재우는 도시 미기후 微氣候(지표면 상태나 지물의 영향을 강하게 받아서 미세한 발생하는 기상이2나 기후상태의 차이)를 조성하도록 고안된 것이었다.
- P36

최초의 도시는 비옥한 초승달 지대의 가장자리인 메소포타미아남부 지역에서 탄생했다. 그 이유를 설명해주는 유서 깊은 이론이 있었다. 메소포타미아 남부는 토양과 기후가 그리 좋지 않다. 강수량은적다. 땅은 메마르고 평평하다. 유프라테스 강과 티그리스 강의 물을이용해야만 그 불모지의 잠재력이 꽃필 수 있었다. 사람들은 유프라테스 강과 티그리스 강에서 물을 끌어오려고 관개사업에 서로 힘을보탰다. 얼마 지나지 않아 그 황무지에서 다량의 잉여 곡물 생산이 가능해졌다. 이렇듯 도시는 온화하고 풍요로운 환경의 산물이 아닌 최대한 협력하고 독창성을 발휘해야 하는, 비교적 혹독한 지대의 산물이었다. 세계 최초의 도시들은 역경을 이겨낸 인간 승리의 결과로 메소포타미아 남부에서 탄생했다. 그 중심에 신전이, 그리고 풍경을 바꾸는 작업과 고도로 밀집된 인구를 관리하는 작업을 조율하는 고위사제와 관료 들이 있었다.
- P41

우루크가 이 세상에 선사한 선물은 바로 도시화와 문어文語였다.
첫 번째 선물이 두 번째 선물로 이어졌다. 우루크는 기존의 확고한 사고방식에 대한 근본적인 혁신이나 타격을 두려워하는 사회가 아니었다. 표기와 수학은 도시라는 가마솥에서 탄생했다. 표기와 수학은 복잡성을 관리하는 행정 기법이었다. 지금까지 발견된 가장 오래된 서판 가운데 하나는 점토에 쓴 영수증이다. 그 내용은 다음과 같다. "보리 2만 9,086자루, 37개월, 쿠심 Kushim."
- P6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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