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집대형의 전투는 공격과 후퇴의 전술보다 훨씬 더 강고하고 격렬하다. 왜냐하면 밀집대형에서 전열은 질서정연하게 배치되어, 화살을 열지어 놓은 것 같기도 하고 기도할 때 예배자들이 도열한 것과 비슷하기도 하다. 이러한 대형은 공격시 훨씬 더 강한 힘을 발휘하고 적절한 전술의 효과적인 활용에도 좋으며, 적을 더욱 겁먹게 하기도 한다. 밀집대형은 어느 누구도 움직일 엄두를 내기 힘든긴 장벽이나 단단하게 지어진 성채와도 같다.
적이 공격을 해올 때, 그것을 상대하는 밀집대형은 전열을 견고하게 지키며 누구도 뒤로 물러나게 해서는 안 된다는 것은 분명하다. 적에게 등을 돌리는 자들은 전열에 혼란을 가져올 것이며 패배를 초래한 죄를 범하게 될 것이다. 무함마드는 밀집대형의 전투가 다른 어떤 방식보다도 더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공격과 후퇴의 전술을 이용한 전투는 전투 중에 후퇴하는 사람들을 보호해주는 견고한 전열이 후방에 준비되어 있지 않다면, 밀집대형에 비해서 강력하지도않고 또 승리를 거둘 가능성도 높지 않다. 후방의 그와 같은 전열은 밀집대형의 역할을 대신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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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대의 왕조들은 수많은 병사와 광대한 영역을 소유했는데, 군대는 소규모 단위로 나누어졌다. 그 까닭은 아주 먼 지방에서도 병사들이 징발되어 그 숫자가엄청나게 늘어났고, 그래서 그들이 전쟁터에서 적과 뒤섞여 활을 쏘고 백병전을벌일 때 아군들끼리도 제대로 알아보지 못하는 상황이 되었기 때문이다. 그와 같은 아수라장 속에서 아군들끼리 서로를 알아보지 못하고 아군을 공격하지 않을까 하는 우려가 생겼고, 그래서 군대를 보다 작은 단위로 나누어 서로를 알아볼 수 있도록 한 것이다. 그들은 군대를 동서남북의 네 방위에 맞추어서 편성했고, 군대의 사령관, 즉 군주 자신이나 장군은 그 중앙에 위치했다. 이러한 배치를
‘전투대형‘ 이라고 불렀다. 이는 페르시아, 비잔틴 제국 그리고 이슬람 초기의 우마이야와 압바스 왕조들의 역사에 언급되어 있다. 군주의 전방에는 장군과 깃발이 있는 전열을 갖춘 부대가 배치되었는데 이를 ‘전위‘라고 불렀다. 군주가 있는곳 우측에 또 다른 부대가 있었고 이를 ‘우익‘이라고 불렀으며, 좌측에도 역시
‘좌익이 배치되었다. 본대의 배후에는 ‘후위‘라고 불리는 또 다른 부대가 두어졌다. 군주와 그의 참모들은 이 네 부대의 중앙에 위치했으며, 그가 있는 곳을 ‘중군이라고 불렀다. 이처럼 정교한 전열은 한 사람의 시야에 들어올 수 있을 정도의 지역에 배치되었고, 더 넓은 지역에 분포되는 경우도 있었으나 각 부대 사이의 거리는 하루나 이틀 거리를 넘지 않았고, 병력의 다과를 고려하여 그들을 최대한 활용할 수 있는 형태로 완성되었다. 이렇게 해서 완성된 전열은 전투개시의 명령이 떨어지면 밀집대형으로 진군할 수 있었다. 이와 같은 사실은 무슬림들의 정복전과 우마이야 및 압바스 왕조들의 역사를 통해서 입증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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