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박을 겉만 핥고, 후추를 통째로 삼키는 사람과는 맛에 관해 이야기할 수 없고, 이웃 사람의 담비 털옷이 부럽다고 한여름에 빌려 입는 사람과는 계절에 관해 이야기할 수 없다. 가짜 형상에다 옷입히고 관을 씌운들 진솔한 어린애들을 속일 수는 없는 것이다.
••••••
지금 무관懋官(이덕무)은 조선 사람이다. 조선은 산천이며 기후가 중국 지역과다르고, 그 언어나 풍속도 한나라, 당나라 시대와 다르다. 그런데도 글짓는 법을 중국에서 본뜨고 문체를 한나라, 당나라에서 답습한다면, 나는 그 글 짓는 법이 고상하면 할수록 내용이 실로 비루해지고, 그 문체가 비슷하면 할수록 표현이 더욱 거짓이 됨을 볼 따름이다.
우리나라가 비록 천하의 동쪽 구석에 자리잡고 있으나, 천승지국千乘之國(제후가 다스리는 나라)에 속한다. 신라와 고려 시대 이래로 비록 검박儉薄하긴 했어도 민간에 아름다운 풍속이 많았다. 따라서 우리말을 한자로 적고 우리 민요를 한시로 표현하기만 하면, 저절로 문장이 이루어지고 그 속에 오묘한 이치가 드러나게 될 것이다. 답습을 일삼지 않고 남의 것을 빌려 오지도 않으며, 차분히 현재에 임하고 눈앞의 삼라만상과 마주 대하니, 오직 무관의 이 시들이 바로 그러하다.
- P131

그렇다면 옛글과 끝내 비슷할 수 없단 말인가? 어째서 비슷하기를 추구하는가. 비슷하기를 추구하는 것은 참이 아님을 자인하는 셈이다. 이세상에서 이른바 서로 같은 것을 말할 때 몹시 닮았다‘ 고 일컫고, 분별하기 어려운 것을 말할 때 참에 아주 가깝다‘ (通)고 말한다. ‘참에 가깝다"고 말하거나 닮았다‘고 말할 때에는 그 말 속에 ‘거짓되다‘ 나 ‘다르다‘는 뜻이 이미 내재되어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 세상에는 이해하기어렵지만 배울 수 있는 것이 있고, 전혀 다르면서도 서로 비슷한 것이 있다. 언어가 달라도 통역을 통해 의사를 소통할 수 있고, 한자漢字의 어느서체로 쓰든 모두 문장을 지을 수 있다.  - P134

이로써 보자면 글이 잘되고 못 되고는 내게 달려 있고, 비방과 칭찬은 남에게 달려 있는 것이다. 비유하자면 귀울이증을 앓거나 코를 고는 것과 같다. 한 아이가 뜰에서 놀다가 제 귀가 갑자기 울자, 입을 다물지 못한 채 기뻐하며 가만히 이웃집 아이더러 말하기를,
"너 이 소리 좀 들어 봐라. 내 귀에서 앵앵 하며 피리 불고 생황 부는듯한 소리가 나는데 별처럼 동글동글하다!" 하였다. 이웃집 아이가 귀를 기울여 대어 보았으나 끝내 아무 소리도 듣지 못하자, 그 아이는 안타까워 소리치며 남이 몰라주는 것을 한스럽게 여겼다.
- P137

글을 잘 짓는 사람은 아마 병법을 알 것이다. 비유하자면 글자는 군사요,
글 뜻은 장수다. 제목이란 적국이요, 고사故事의 인용이란 전장의 진지를 구축하는 것이다. 글자를 묶어서 구句를 만들고 구를 모아서 장章을 이루는 것은 대오를 이루어 행군하는 것과 같다. 운韻에 맞추어 읊고 멋진 표현으로 빛을 내는 것은 징과 북을 울리고 깃발을 휘날리는 것과 같다. 앞뒤의 조응照應이란 봉화를 올리는 것이요, 비유란 기병騎兵이 기습 공격하는 것이다. 억양반복抑揚反復이란 맞붙어 싸워 서로 죽이는 것이요, 파제破題한 다음 마무리하는 것은 먼저 성벽에 올라가 적을 사로잡는 것이다.
함축을 귀하게 여기는 것은 반백의 늙은이를 사로잡지 않는 것이요, 여운을 남기는 것은 군대를 정돈하여 개선하는 것이다.
- P151

달관한 사람에게는 괴이한 것이 없으나, 속인들에게는 의심스러운 것이 많다. 이른바 ‘본 것이 적으면 괴이하게 여기는 것이 많다‘는 것이다. 그러나 어찌 달관한 사람이라 해서 사물들을 일일이 찾아 눈으로 직접 보았겠는가. 한 가지를 들으면 열 가지를 눈앞에 그려 보고, 열 가지를 보면 백 가지를 마음속으로 상상해 보았을 뿐이다. 천만 가지 괴기한 현상이란 도리어 사물에 잠시 붙은 것이고, 제 자신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는것이다. 따라서 마음이 한가롭게 여유가 있으며, 사물에 응수함이 무궁무진하다.
반면 본 것이 적은 자는 해오라기를 기준으로 까마귀가 검다고 비웃고, 오리를 기준으로 두루미가 다리가 길다고 위태롭게 여긴다. 그 사물자체는 본디 괴이할 것이 없는데 저 혼자 화를 내고, 한 가지 일이라도 제 생각과 같지 않으면 만물을 모조리 모함하려 든다. - P164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