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섯 가지 말라리아원충 가운데 열대열 말라리아원충은 가장 흔하며 가장 살해 가능성이 높아서, 매년 21만 5,000명의 죽음에 책임이 있을 것으로 추정된다. 이는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의 원자 폭격으로 죽은 사람 수와 거의 같은데, 이런 일이 매년 일어나는 것이다. 그러나 기생충 자체를 공격하는 방법은 말라리아와 싸우는 데 그리 성공적인 전략이 되지 못했다. 특히 가장 널리 쓰이는 말라리아 치료제 클로로퀸chloroquine과 설파독신 - 피리메타민 sulphadoxine-pyrimethamine에 대해 열대열 말라리아원충이 점차 내성을 지니게 되면서 더 그러했다. "이 질병의 아킬레스건은 매개체예요." 2016년 세계 최고의 말라리아 퇴치 전문가인 분자생물학자 안드레아 크리산티 Andrea Crisanti가《스미스소니언 Smithsonian > 매거진에서 말했다. 병원체를 공격하면 "결국 내성만 기르게 되니까요." 그런데 매개체를 파괴한다면? 게임 오버다. - P352
모기는 대략 3,500종 정도 된다. 이 가운데 병을 전파하는 것은 약100 종뿐이다. 게다가 전 세계에 말라리아 감염의 대다수를 전파하는 것은 겨우 8종으로, 모두 형태학적으로는 동일하지만 생식적으로격리 된 아노펠레스 감비아이 Anopheles gambiac 종 복합체에 속한다. 아노펠레스 감비아이가 질병을 퍼뜨리는 것 말고는 우리 세계에서별 의미 있는 생태적 역할을 하지 못한다고 믿는 과학자들이 점점 늘어났다. 그들은 계속 살펴보고, 또 열심히 살펴보았다. 그리고 이 모기가 사라졌을 때 다른 생물로는 결코 채워지지 않는 생태적 틈새도 없음을 알아냈다. 우리가 이제껏 사냥, 서식지 손실, 인간 활동으로인한 기후변화 등으로 많은 동물을 멸종시키긴 했지만, 이제 피 빨아먹는 이 모기들, 그리고 치명적 질병을 옮기는 얼마 되지 않는 이 모기를 최초로 인간의 의도에 따라 지구 표면에서 멸종시켜야 한다고주장하는 사람들이 나타나고 있다. 내가 의도적 멸종intentional extinction이라는 개념에 대해 처음으로 들은 것은 2010년 《네이처》에 실린 저널리스트 재닛 팡Janet Fang의 기사를 통해서였다. "궁극적으로, 다른 생명체는 하지 못하는데 모기만이 할 수 있는 일은 별로 없어 보인다. 아마도 한 가지만 빼고는. 모기는 한 개체의 피를 빨아 먹은 뒤 이를 다른 개체의 몸속에 주사하는 점에서는 치명적일 정도로 능률적이다. " - P354
그리하여 이 대목에서 유전자 드라이브가 등장한다. 하나의 종을멸종으로 몰아가지 않고 그 대신 이 종을 근본적으로 변형시켜 훨씬털 위험한 형태로 살아남도록 하는 것이 더 나은 해결책이라고 판단하는 과학자들이 있다. 2015년 캘리포니아대학교 어바인의 한 연구팀은 유전자 편집을 쉽게 하는 크리스퍼 캐스CRISPR-Cas9이라는 기술로 모기의 유전자를 변형시켜 열대열 말라리아원충을 죽이는 항체를 옮기도록 했다. 나아가 이 항체 유전자가 월등한 우성유전자가되어 다음 세대에 항체가 유전되는 비율이 99%까지 올라가고 거의 모든 자식, 그리고 그 자식의 자식까지 말라리아를 퍼뜨리지 못하도록 모기의 신체 기관계를 조작했다. 모기의 출생과 번식 주기가 며칠밖에 걸리지 않는다는 것을 고려하면 오랜 시간이 지나지 않아 이런 유전자가 광범위한 개체군 전체에 퍼지게 될 것이다. - P355
돌고래가 실제로 고조된 감정을 지닐 수도 있지만, 다른 한편으로 인간보다 자기감정을 훨씬 잘 조절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큰돌고래의 대뇌변연계가 뇌 전체에 퍼져 있는 양상 때문에, 서로 충돌하며 작용하는 감정적 측면과 이성적 측면이 따로 있지 않을 수도 있다(운전중에 분통을 터뜨리는 인간 뇌가 너무도 자주 그렇듯이), 야생 돌고래 프로젝트의 연구 총책임자 데니스 허징Denise Heizing의 믿음에 따르면, 오히려 감정은 모든 돌고래의 생각과 행동에서 훨씬 완전하게 통합된 부분을 이룰 수도 있다. 그 결과 인간보다 훨씬 깊은 감정적 애착을 서로에게 느끼고 다른 생명체에 대해서도 훨씬 큰 공감을 보이게 되는데, 이 공감이 바로 고래목이 가진 인간 감정의 유사물이다. 더욱이 뇌 손상을 입은 인간을 대상으로 한 연구에 따르면, 시각이나 청각 등 감각 정보의 처리와 관련된 신피질의 뉴런과 대뇌변연계의 뉴런 비율은 감정 절제 능력에 영향을 미친다. 돌고래는 이 비율이 인간보다 훨씬 높다. 야생 돌고래 프로젝트의 과학 고문인 토머스 화이트 Thomas White는 "인간이라면 흥분하여 폭력적 반응을 보였을 법한 상황에서도 돌고래가 인간에게 공격적으로 행동하지 않는이유"가 이런 점으로 설명될 수 있다고 믿는다. 다시 말해, 전형적인 상황에서 돌고래가 가령 사람의 목숨을 빼앗는 것과 같은 특정 행동을 절대 하지 않는다면, 이런 사실은 감정 상태가 고조되어도 바뀌지 않을 것이라는 점이다. 정말 그렇다면 이는 감정 지능이 엄청나게 높다는 지표일 것이다. - P370
비교적 평온한 삶을 살아온 코끼리들의 경우 위협적인 소리에 귀를 쫑긋 세우거나 코를 쳐들어 바람의 냄새를 맡거나 서로 무리를 짓는 방식으로 반응했다. 도살 과정에서 살아남은 코끼리들은 위협적이지 않은 소리는 위협적인 소리든 별반 다르게 반응하지 않았다. 그러한 순간에 응당 느꼈어야 하는 감정을 느끼지 못하는 것으로 보였다. 과거의 트라우마를 지닌 사람들이 자신의 물리적 현실에 감정을맞추려고 힘겹게 애쓰는 방식과 다르지 않았다. 당연히 이들 코끼리에게 PTSD에 대해 알려 준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그러나 연구 팀은 자신들이 목격한 것이 적어도 부분적으로는 필라네스버그국립공원의 코끼리 떼가 장기간에 걸쳐 심리적 고통을 받아 온 결과라고 결론 내렸다. 인간의 PTSD가 단지 문화적으로 구축된 현상이 아니라 우리의 유전자 속에, 그리고 수천만 년 전 공통조상을 두었던 생물의 유전자 속에 박혀 있는 것임을 입증하는 증거의 토대에 또 하나의 벽돌이 쌓인 것이다. - P37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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