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양의 고도는 생각보다 높았다. 세종기지가 남극대륙의 변두리라 하더라도오존 구멍은 세종기지를 포함하는 것은 물론 넓을 때는 남미 남단까지 뻗친다.
따라서 이 구멍으로 들어오는 자외선은 어마어마하다.
처음 이곳에 와서 그래도 남극이고 보지 못한 풍경이니까 폼도 잡고 사진도찍고 했다. 하루 종일 돌아다닌 다음에 기지에서 저녁을 먹는데 거의 막지 못했다. 이날 메뉴가 낙지볶음, 낙지볶음을 한 젓갈 떠서 입으로 가져가는 순간 눈물이 쏙 나왔다. 얼굴 전체에 일광 화상을 입었던 것이다. 매운 낙지볶음이 입술에닿기도 전에 입 주위부터 화끈거리더니 젓가락이 올라오던 관성으로 입안에 들어가자마자 이 화끈거림이 얼굴 전체로 번진 것이다. 더운밥도 그 더운 기운이얼굴에서는 쓰라리게 느껴졌다. 결국은 찬물에 밥 말아 먹고 말았다. 이 추운 날씨에 샤워도 찬물로 해야 했다. 화끈거려서 더운 김이 얼굴에 닿는 것조차 도저히 견딜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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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에서 이곳 공기가 맑다고 했는데, 한 번 짚고 넘어가야겠다. 정말 맑다. 먼지 하나 없다. 공기도 좋다. 신선하다. 대기권 안의 공기 중 산소가 20퍼센트를가지한다는 것은 당연한 사실이지만, 이곳에는 나무가 하나도 없기에 내가 숨쉬는 산소는 어디서 왔을까 상상해 볼 정도였다. 먼지가 있을 리 없다. 수증기가 많은 날만 아니면 흐린 날에도 멀리까지 잘 보인다. 너무나 잘 보여서 멀리 있는 것도 가까이 보인다. 그래서 조심해야 한다. 착각하기가 쉽다. 특히 조난되었을 경우 조심해야 한다고 한다. 사실 평범하게 넓기만 한 빙원에서는 착각이 잘 일어났다. 설상차로 달리고 달려도 같은 위치인 것 같았다. 저 너머에 뭔가가 있을 것같았지만 그 앞까지는 한참을 가야 했고, 그 앞에 가면 아까 봤던 위치는 다시 그만큼 멀어져 있는 것 같았다. 아마 사막 한가운데서도 이런 느낌일 것이다. 다만 사막의 모래가 하얀 눈으로 바뀌었다고 생각하면, 그리고 더위 대신 추위로 바뀌었다고 생각하면 그 착시현상은 별반 차이가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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