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렇다면 네가 부끄럽게 여기는 것은 과연 후자이지 전자는 아니로구나.‘ 저자에서는 이익으로써 사귀고, 면전에서는 아첨으로써 사귀는법이다. 따라서 아무리 서로 좋아하는 사이라도 세 번 손을 내밀면 누구나 멀어지게 되고, 아무리 묵은 원한이 있다 해도 세 번 도와주면 누구나 친해지기 마련이야. 그러므로 이익으로써 사귀면 지속되기 어렵고, 아첨으로써 사귀면 오래갈 수가 없지.
대단한 사귐은 얼굴을 마주 대하지 않아도 되고, 두터운 벗은 서로 가까이 지내지 않아도 된다네. 다만 마음과 마음으로 사귀고, 그 사람의 덕을 보고 벗을 삼으면 되는 것이야. 이것이 바로 도의로써 사귄다는 것일세. 위로 천 년 전의 옛사람과 벗을 해도 사이가 먼 것이 아니요, 만 리나 떨어져 지내는 사람과 사귀어도 사이가 먼 것이 아니라네.
- P67

‘소매 넓은 옷을 입으면 몸에 익숙지 않고, 새 옷을 입으면 더러운 흙을 짊어질 수가 없소.‘
하며 사양한다네. 해마다 설날 아침이 되어야 비로소 갓과 허리띠와 옷과 신발을 갖추어 착용하고, 이웃 마을을 두루 찾아다니며 세배를 하지.
세배를 마치고 돌아오면 곧바로 헌 옷으로 갈아입고, 다시 삼태기를 메고 마을 안으로 들어간다.. 그러니 엄 행수와 같은 이는 이른바 ‘자신의 덕을 더러움으로 감추고 세속에 숨어 사는 위대한 은자‘ 가 아니겠는가?
- P69

그러니 선비로서 곤궁하게 산다고 해서 얼굴에까지 그 티가 드러나는것도 부끄러운 일이요, 출세했다 하여 몸짓에까지 그 티를 드러내는 것도 부끄러운 일이네. 엄 행수와 비교했을 때 부끄럽지 않을 사람은 거의드물 걸세. 그래서 나는 엄행수에 대하여 스승으로 모시겠노라고 한 것이지. 어찌 감히 벗으로 삼겠노라고 하겠는가? 때문에 나는 엄행수의 이름을 감히 부르지 못하고, 예덕선생‘ 이라 부르는 걸세."
- P7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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