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헬은 아예메넴의 몬순기 공기가 얼마나 눅눅한지 잊고 있었다. 부풀어오른 옷장이 삐걱거렸다. 잠긴 창문이 벌컥 열렸다. 표지 사이의 책장이 눅눅해져 물결쳤다. 저녁때면 낯선 벌레들이 망상처럼 나타나 베이비 코참마의 흐릿한 사십 와트짜리 전구에서 타들어갔다. 바싹 화장된 사체가 낮이면 마룻바닥과 창틀 여기저기 널려 있어, 코추 마리아가 플라스틱 쓰레받기에 그것들을 쓸어담아 버릴 때까지는 공기 중에 ‘뭔가 타는‘ 냄새가 감돌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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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는 동안 그는 어디에 있든 그 배경 - 책장, 정원, 커튼, 문간, 거리 - 에 녹아드는 능력을 갖게 되어 살아 있는 것처럼 보이지 않았고 익숙지 않은 눈에는 투명한 존재와도 같았다. 그를 모르는 사람들은 에스타와 한방에 있더라도 한참 후에야 그의 존재를 알아차렸다. 에스타가 전혀 말을 하지 않는 것을 알아차리는 데는 더 긴 시간이 걸렸다.
어떤 사람들은 전혀 알아채지도못했다.
에스타는 이 세상에서 극히 작은 공간만을 차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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