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도주의 - 기능주의 논쟁
전쟁이 끝나고 수십 년 동안 역사학자들은 홀로코스트를 놓고 의도주의 (intentionalism)와 기능주의 (functionalism)로 갈려 논쟁을 벌였다.
의도주의에 따르면, 1920년대 초반부터 히틀러가 유대인 대량 학살을 염두두었으며, 1930년내의 나치 정책은 이 목적을 위해 구상된 것이었고, 곧바로 러시아 침략과 생활권 Lebensraum 추구가 기획되면서, 유대인 문제의 최종 해결과 결부되었다는 것이다. 반면 기능주의는 유대인에 대한 원래 계획은 추방이었지만, 대러시아전의 실태로 최종 해결이 전개되었다는 것이다. 하지만 홀로코스트 역사학자 라울 힐버그는 이런 해석들이 인위적인 구분이라고 생각한다. "실상은 이 두 해석 이느 쪽보다도 더 복잡하다. 나는 히틀러가 정시 명령을 내렸다고 믿지만, 그 명령 자체는 어떤 과정의 최종 산물이었다고 생각한다. 히틀러는 줄곧 관료들이 일정한 틀에 따라 생각하고 솔선할 것을 독려하는 많은 애기들을 했지만, 전체적으로 보았을 때 체계적인 총살, 특히 어린 아이들과 고령의 노인들을 총살하는 것, 독가스로 살상하는 것은 모두 히틀러의 명령이 필요한 일이었을 것이다."
- P417

기능주의적 관점에서 사건이 일어난 순서를 살펴보자. 처음엔 독일인의 삶에서 유대인을 내쫓는 것이 목적이었다(여기에는 유대인들의 재산과 주택 대부분을 압류한 것이 포함된다), 그 다음은 강제 수용과 격리였다(그곳들은 대개 수용 인원이 과다하고 환경이 불결해서 질병과 죽음을 수반했다). 다음은 경제적인 착취였다(무임 강제 노동을 시켰는데,
보통 중노동, 굶주림, 죽음을 수반했다). 그다음이 바로 학살이었다. 구트만은 이런 상황 해석에 동의한다. "최종 해결은 바닥에서부터 국지적으로 시작되어, 곳곳에서 일종의 상승이 일어나, 결국 하나의 포괄적인 사건으로 귀결된 것이었다. 그것을 계획이라고 불러도 되는지는 모르겠다. 나는 그것이 청사진이었다고 말한다. 대학살은 유대인에 대한 일련의 단계와 공격을 거치면서 나온 결과였다." (1996) - P149

인종 분류가 문제가 되는 까닭에는 집단 속 변이성이 집단 사이 변이성보다 더 크다는 점도 있다. 카발리 스포르차와 동료는 이렇게논한다. "통계적으로 보면, 군집 속 유전자 변이는 군집 사이 유전자변이보다 크다." 달리 말하면 집단 속 개체들이 집단들 사이 개체들보다 더 다양하다는 얘기이다. 왜 그럴까? 그 대답은 진화이다.
제아무리 규모가 작다고 해도 모든 개체군 속에는 큰 유전자 변이가 있 다. 이런 개체의 변이가 아주 오랜 기간에 걸쳐 축적되어 왔다. 왜나하면 사람에게서 관찰되는 대부분의 다형성은 각 대륙으로 뿔뿔이 흩어지기 전, 어쩌면 족히 50만 년 전 사람종이 기원하기 전에 이미 형성되었을 것이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개체군들에서 똑같은 다형성이 발견된다. 그러나 각 개체군마다 빈도는 다르다. 왜냐하면 인류가 지리적으로 분화한 것은 최근의 일이며, 분화에 걸린 시간은 아마 사람종이 존재해 온 시간의 3분의 1 이하일 것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실질적인 분기分岐가 축적되기에는 너무 짧은 시간이었다. - P4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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