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 탐색의 과정은 단순한 것에서 시작해 갈수록 점점 힘들어진다. 처음에는 우리가 우리 밖의 세계를 통제하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깨닫는다. 이 단계는 쉽다. 그런 다음에는 우리 자신의 몸 안에서 일어나는 것조차 우리가 통제하는 게 아니라는 사실을 깨닫는다. 이 과정은 더 어렵다. 궁극에는 우리의 욕망,
심지어 이런 욕망에 대한 반응까지 우리가 통제하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깨달아야 한다.
이 사실을 깨닫게 되면 우리는 우리의 의견이나 느낌, 욕망에 덜 집착할 수 있다. 우리는 자유 의지가 없다. 하지만 우리 의지의 폭정에서 좀 더 자유로워질 수 있다. 인간은 보통 자신의 욕망에 너무나 큰 중요성을 부여한 나머지 이 욕망에 따라 온 세상을 지배하고 조성하려 애쓴다. 자신의 열망을 추구하느라 달에도 날아가고, 세계대전을 일으키고, 전 생태계까지 불안정하게 만든다. 만약 우리의 욕망이 완전히 자유로운 선택의 마술 같은 발현이 아니라 생화학적인 과정(여기에는 문화적 요인들도 영향을 미치지만 이 역시 우리의 통제력 밖에 있다)의 산물이라는 사실을 이해한다면, 우리는 그것에 덜 사로잡힐 수도 있을 것이다. 우리 머릿속에 떠오르는 환상이라면 무엇이든 실현하려 애쓰기보다 자기 자신과 정신, 그리고 욕망을 이해하는 것이 더 낫다.
- P454

그러니 정치인이 신비로운 용어로 이야기하기 시작할 때는 늘 경계해야 한다. 그들은 이해하기 힘든 거창한 말 속에 숨기는 방법으로 실제 고통을 위장하고 변명하려 들지 모른다. 특히 다음 네 단어를 조심해야 한다. 희생, 영원, 순수, 구원. 이 중 어떤 단어라도 듣게 되면 경보음을 울려야 한다. "그들의 희생이 영원한 우리 민족의 순수함을 구원할 것" 이라는 말을 지도자가 상습적으로 해대는 나라에 살고 있다면 각오해야 한다. 정신을 온전히 보존하려면 그런 지도자의 주문은 늘 현실의 용어로 바꿔 이해해야 한다. 즉, "병사는 고뇌 속에서 울고, 여성은 얻어맞고 야만적인 취급을 당하며, 아이는 두려움 속에 떨게 될 것" 이라는 뜻으로 말이다.
우주와 삶의 의미, 자신의 정체성에 관한 진실을 알고 싶은가. 가장 좋은 출발점은 먼저 고통을 관찰하고 그것이 무엇인지 탐구하는것이다.
답은 결코 이야기가 아니다.
- P466

 고통은 외부 세계의 객관적 조건이 아니다. 나 자신의 정신이 일으키는 정신적 반응이다. 이것을 깨닫는 것이 더한 고통의 발생을 그치는 첫걸음이다.
- P473

기술이 개선되면서 두 가지 일이 일어났다. 첫째, 돌칼이 점차 핵미사일로 진화함에 따라 사회 질서를 불안정하게 만드는 것은 더욱 위험해졌다. 둘째, 동굴 벽화가 점차 티브이 방송으로 진화함에 따라 사람들을 속이기는 더 쉬워졌다. 가까운 미래에 알고리즘은 이 과정이 완결에 이르게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면 사람들은 자기 자신에 관한 실체를 관찰하기가 거의 불가능해질 수 있다. 장차 우리가 누구이며, 우리 자신에 관해 알아야 할 것은 무엇인지를 결정하는 것은 알고리즘일 것이다.
앞으로 수 년 혹은 수십 년 동안에는 우리에게 선택의 여지가 있다. 우리가 노력을 기울인다면 아직은 우리 자신이 진정 누구인지 탐사할 수 있다. 하지만 이 기회를 활용하고 싶다면 지금 실행하는것이 좋을 것이다.
- P4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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