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몇 년간의 사건들을 보면, 민족주의는 러시아와 인도, 중국은 말할 것도 없고 유럽과 미국 시민들에게까지 아직도 강력한 영향을 미치고 있다. 전 세계 사람들은 전 지구적 자본주의의 비인간적인 힘에 의해 소외되고, 국가 차원의 보건, 교육, 복지 체계의 운명을 걱정하며 민족의 품 안에서 안도감과 의미를 찾고 있다.
- P177

원자폭탄은 너무나 명확하고 즉각적인 위협이어서 아무도 무시할 수 없다. 반면 지구온난화는 상대적으로 불분명하고 오래 계속된 위협이다. 따라서 장기적인 환경을 고려하다가도 단기적으로 고통스러운 희생이 요구될 때마다 민족주의자들은 당장의 국가 이익을 우선시하고 환경 문제는 나중에 걱정해도 된다거나 다른 누군가에게 떠넘기는 쪽으로 행동하기 쉽다. 아니면 아예 문제 자체를 부인할 수도 있다. 기후변화에 대한 회의주의를 민족주의 우파가 옹호하는 경향을 보이는 것은 우연의 일치가 아니다.  - P187

우리에게는 새로운 지구적 정체성이 필요하다. 국가 단위의 제도는 전례 없는 일련의 지구적 곤경을 다룰 능력이 없기 때문이다. 우리에게는 지금 전 지구 차원의 생태계와 경제와 과학이 있지만 우리는 여전히 민족 단위의 정치에 고착돼 있다. 이런 부조화 때문에 정치 체제가 우리의 주요 문제를 효과적으로 해결하지 못하고 있다. 효과적인 정치를 위해 우리는 생태계와 경제와 과학의 행진을 탈지구화하거나 우리의 정치를 지구화해야 한다. 생태계와 과학의 행진을 탈지구화하기는 불가능하고, 경제의 탈지구화는 십중팔구 비용이 많이 들것이기 때문에, 유일한 현실적 해법은 정치를 지구화하는 것이다.
그렇다고 ‘세계 정부‘를 수립하자는 말은 아니다. 그것은 의심스럽고 비현실적인 비전이다. 그보다는 한 나라나 심지어 도시 단위의 정치가 작동하는 과정에서도 전 지구 차원의 문제와 이익에 좀 더 무게가 실려야 한다는 뜻이다.  - P195

하지만 일본은 서구의 청사진을 맹목적으로 따르지 않았다. 그들은자신들의 독특한 정체성을 보호하고, 과학이나 근대성, 그리고 어떤 모호한 지구 공동체가 아닌 일본에 충성을 바치는 나라가 되기위해 결사적으로 싸웠다.
그 목적을 위해 일본은 고유 종교인 신도神道를 일본 정체성의 초석으로 고수했다. 사실 신도를 재발명했다. 전통 신도는 다양한 정령과 신령, 귀신에 대한 믿음이 뒤섞인 애니미즘 신앙이었다. 모든마을과 신사가 자기만의 정령과 지역 관습을 갖고 있었다. 19세기후반에서 20세기 초에 일본은 국가 공인 신도를 만들면서 수많은지역 전통들은 억압했다. 이렇게 만들어진 ‘국가 신도‘에는 민족성과 인종이라는 대단히 근대적인 사상이 주입됐다. 일본 엘리트들이유럽 제국주의에서 따온 요소였다. 불교와 유교, 사무라이 봉건 윤리 등에서도 국가 충성에 도움이 되는 것이라면 모두 가져다 뒤섞었다. 그 위에다 일본의 황제 숭배를 최고 원리로 신성시했다. 이들은 일본 황제를 태양의 여신 아마테라스의 직계 후손이자 살아 있는 신으로 간주했다.
- P208

위의 두 경우는 모두 인종주의의 기미로 보일 수 있다. 하지만 사실 이들은 인종주의자가 아니다. ‘문화주의자‘다. 사람들은 전통적인 인종주의에 대해서는 영웅적인 투쟁을 이어가고 있다. 하지만그사이 전쟁터가 이동했다는 사실은 미처 깨닫지 못하고 있다. 그결과 전통적인 인종주의는 줄어들고 있는 반면, 오늘날 세계는 ‘문화주의자들‘로 가득하다.
- P2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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