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찮은 정보들이 범람하는 세상에서는 명료성이 힘이다. 이론적으로는 누구나 인류의 미래에 관한 논쟁에 참여할 수 있지만 명료한 전망을 유지하기란 대단히 어렵다. 심지어 그런 논쟁이 진행되고있는지, 핵심 질문은 무엇인지 알아차리지도 못할 때가 많다. 우리같은 수십억의 사람들은 그런 것을 일일이 조사해볼 여유가 거의없다. 그보다 다급하게 처리해야 할 것이 많기 때문이다. 출근을 해야 하고 아이를 돌봐야 하고 나이 든 부모도 보살펴야 한다. 불행히도, 역사에는 에누리가 없다. 당신이 아이를 먹이고 입히느라 너무 바빠서 잠시 자리를 비운 사이에 인류의 미래가 결정된다 해도, 당신과 아이들이 그 결과에서 면제되지는 않는다. 이건 아주 부당하다. 하지만 누가 역사는 공정하다고 했던가?
- P8

러시아, 중국, 쿠바에서 혁명을 일으킨 것은 경제에서는 핵심적이었으나 정치권력은 누리지 못한 사람들이었던 반면,
2016년 트럼프와 브렉시트를 지지한 것은 아직 정치권력은 누리고 있지만 자신의 경제 가치를 잃는 것이 두려웠던 많은 사람들이었다. 아마도 21세기 포퓰리즘 반란은 사람들을 착취하는 경제 엘리트가 아니라 더 이상 사람을 필요로 하지 않는 경제 엘리트에 맞서는 구도로 전개될 것이다. 이는 지는 싸움이 될 가능성이 높다. 착취에 반대하는 것보다 사회와 무관해지는 것에 맞서 투쟁하기가 훨씬 힘들기 때문이다.
- P29

하지만 자유주의는 우리가 당면한 가장 큰 문제들에 대해서는 명확한 답이 없다. 생태학적 붕괴와 기술적 파괴라는 문제 말이다. 자유주의는 전통적으로 경제 성장에 의지해 어려운 사회적, 정치적갈등을 마술처럼 해결했다. 자유주의가 프롤레타리아와 부르주아를 화해시키고, 신앙인과 무신론자, 토박이와 이민자, 유럽인과 아시아인까지 화해시킨 비결은 모두에게 파이의 몫을 더 키워주겠다는 약속이었다. 실제로 파이의 크기를 끊임없이 키워감으로써 그것이 가능했다. 하지만 경제 성장은 지구의 생태계를 구하지는 못할것이다. 오히려 정반대로 경제 성장이야말로 생태학적 위기의 원인이다. 경제 성장은 기술적 파괴도 해결하지 못할 것이다. 경제 성장자체가 점점 위력을 더해가는 파괴적 기술의 발명에 의존하고 있기때문이다.
자유주의 이야기와 자유 시장 자본주의의 논리는 사람들이 거대한 기대를 하게끔 부추긴다. 20세기 후반부에 각 세대는 - 휴스턴에 살든, 상하이에 살든, 이스탄불에 살든, 상파울루에 살든 - 이전세대보다는 나은 교육, 뛰어난 의료 서비스, 더 큰 소득을 누렸다. 하지만 다가올 수십 년 동안에는 기술적 파괴와 생태학적 붕괴가 합쳐져서 젊은 세대는 현상 유지만 할 수 있어도 다행일지 모른다.
- P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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