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령 세 판을 둔다면 첫판은 한 방쯤 져줘야 돼, 두번째 판은 만방으로 이기지. 그리고 세번째 판은 조금만 이기든가 져주든가. 그럼 상대는 자신이 실력은 나은데운이 모자랐다고 생각하게 되지. 이런 협잡은 프로의 세계에서는 통하지 않지. 만방으로 이긴다고 반집 이긴 것보다 더 쳐주는 것도 아니고,
오로지 승부에만 신경을 쓰지. 그래서 프로의 바둑은 고도로 정밀하고 집중적이고 순수한 거야. 이강철 같은 프로가 나한테 진 건 내기 바둑의 세계를 잘 몰랐기 때문이지. 그 친구는 어릴 때부터 바둑 신동으로 자라와서 그대로 프로에 입단했어. 내기 바둑이니 뭐니 하는 잡스러운데는 눈 한 번 준 적이 없었을 것이고, 사실 그런 상대하고 그냥 두어서는 절대로 이길 수가 없어. 내가 다섯 점 깔아주는 상대를 그 사람은 두점이나 석 점밖에 못 접는다고 해서 그 사람 실력이 나보다 약한가. 천만에. 그건 세상을 대하는 태도의 차이지. 본질적인 면에서 나는 그 사람, 그리고 순수하게 입단을 목표로 공부해 온 사람들을 이길 수가 없어. 처음에는 같은 실력이라고 해. 가는 길이 서로 다른 거야. 시간이 갈수록 내 바둑은 불순해지고 그 사람들 바둑은 순수해지지. 그런 식으로 실력 차가 나면 영원히 극복할 수 없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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