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물녘이 되면 하늘은 심술궂은 아이처럼 붉은 기운을 단숨에 걷어가버렸다. 사방 어디에도 산이 없어서 더 그랬을 것이다. 유카탄의 석양은 느지막이 엉덩이를 붙이고 있다가 일순 사라져버렸던 것이다. 평생 지평선을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조선인들에게 이벌판의 황막함은 더욱 강렬하게 느껴졌다. 그제야 사람들은 자신들이 산과 산 사이에서 태어나 산을 바라보고 자랐으며 산등성이로 지는 해를 보고 잠자리에 들었음을 깨달았다. 넘어갈 아리랑고개가 없는 끝없는 평원은 그야말로 낯선 풍경이어서 사람들은 딱히 바닥이 딱딱해서라기보다 지평선이 주는 막막함과 공허로 뒤척였다. - P109

이종도는 바깥이 소란스러워지자 문을 열고 내다보았다. 글을 쓸 줄 모르는 자들이 눈으로 호소하고 있었다. 편지를 쓰시는 게지요? 방해하지 않을 테니 어서 편지를 쓰십시오. 우리는 다만 기다릴 뿐입니다. 폐하께, 그리고 정부에 우리의 이 실상을 알려주시오. 돈도 밭도 필요 없으니 제발 우리를 데려가달라고, 그리고 그 편지를 다 쓰시거든, 일가친척 피붙이께도 다 쓰시거든, 우리 것도 한 번만 써주시오. 무사하지는 않으나 잘 있다고,
내 형제, 내 가족에게 전해주시오. 그들의 눈빛은 그렇게 말하고있었다. 그것은 황족이자 사대부인 이종도에겐 새삼 충격이었다.
서울에선 단 한 번도 자신을 향한 이런 애절한 눈빛을 마주한 적이 없었다. - P200

1956년이 되어서야 밀림으로 뒤덮인 띠깔의 마야 유적지에 대한 본격적인 연구와 탐사가 시작됐다. 펜실베이니아 대학과 과테말라 정부는 고고학적 연구와 복원작업을 시작하였다. 1991년 과테말라와 스페인 정부는 흙과 나무뿌리로 뒤덮인 제1신전과 제4신전을 원래의 형태대로 재현하기로 결정하였다. 연구팀들은 신전의 정상과 주변에서 몇 구의 해골을 발견하였고 이를 박물관으로 보냈다. 그러나 그곳을 거쳐간 일단의 용병들과 그들이 세운 작고 초라한 나라의 흔적은 발굴되지 않았다.
- P38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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