속삭임
마나님이 툇마루에 나앉은 것은 밖에서 나는 어떤 기척 때문이었다. 분명히 소리도 아닌 것이 냄새도 아닌 것이 불러낸 것 같은데 밖은 텅 비어 있었다. 겨우내 방 속 깊이 들어오던 햇빛이 창호지 문밖으로 밀려나면서 뒷마루에서 맹렬히 꼼지락대고 있을 뿐, 스멀스멀 살갖을 간질이던 기척은 바로 저거였구나. 봄기운이었다. 별안간 방 안이 굴속처럼 어두워 보였다. 낮잠을 자던 영감님도 어느 틈에 무릎걸음으로 기어 나와 눈을 가느스름히 뜨고 아직은 겨울나무 티를 못 벗은 마당의 감나무 살구나무 앵두나무 가지 끝에서 노니는 봄볕을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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