속삭임
마나님이 툇마루에 나앉은 것은 밖에서 나는 어떤 기척 때문이었다. 분명히 소리도 아닌 것이 냄새도 아닌 것이 불러낸 것 같은데 밖은 텅 비어 있었다. 겨우내 방 속 깊이 들어오던 햇빛이 창호지 문밖으로 밀려나면서 뒷마루에서 맹렬히 꼼지락대고 있을 뿐, 스멀스멀 살갖을 간질이던 기척은 바로 저거였구나. 봄기운이었다. 별안간 방 안이 굴속처럼 어두워 보였다. 낮잠을 자던 영감님도 어느 틈에 무릎걸음으로 기어 나와 눈을 가느스름히 뜨고 아직은 겨울나무 티를 못 벗은 마당의 감나무 살구나무 앵두나무 가지 끝에서 노니는 봄볕을 바라본다.
- P15

봄을 또다시 맞아 흙냄새를 맡으며 나물을 캘 수 있다는것, 캐어 가면 반길 사람이 있다는 것이 너무 고마워 천지신명께 절이라도 올리고 싶다. 천지신명의 올해 첫 선물인 파릇파릇한 먹거리를 찾아 이렇게 겸손되이 땅을 기는 게 곧 절인것을. - P47

 사람은 속절없이 늙어가는데 계절은무엇하러 억만년을 늙을 줄 모르고 해마다 사람 마음을 달뜨게 하는가.
- P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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