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가 나를 가쓰의 부하라고 생각한 채 이리오모테 섬인지 어딘지로 가버리는 건 진짜 신경질 나는 일이거든. 그래서 지로 네가 직접 보는 앞에서 가쓰와 결투를 해주려는 거야. 가쓰는 오른팔이 부러졌지? 이건 녀석과 똑같은 조건을 만들려는 거."
구로키가 묶어놓은 제 오른팔을 탁탁 쳤다. 거무스레한 얼굴에서 하얀 이가 내보였다.
"그런 거라면 처음부터 그렇게 말했어야지!" 지로가 고함을내질렀다. 마음이 훌떡 바뀌어 새로운 감정이 물밀듯이 밀려왔다. 신바람이 뭉클뭉클 피어오른 것이다.
"자, 가자!"
구로키의 재촉에 자전거에 올랐다. 구로키는 뒤에 타더니 지로에게 몸을 딱 붙여왔다. 헤어 무스 냄새가 났다. 이 망할 녀석,
이라고 생각했다. 지로는 자전거를 힘껏 밟아댔다.
- P387
"야, 제발 그만 좀 해." 가쓰가 불쑥 내뱉었다. "너희들, 정말 끈질기다. 끈질겨, 초딩들이 왜 이래, 진짜? 중학생이 큰소리를치면 좀 숙여주는 맛이 있어야지. 이건 뭐, 대들고 또 대들고, 어휴."
"네가 먼저 만 엔을 가져오라, 자전거로 모시러 와라, 그런 말도 안 되는 요구를 하니까 그렇지."
"야, 그까짓 만 엔, 다른 애들은 대개 군소리 없이 내주더라. 그러면 나도 잘 봐줬을 거라고."
"우리가 왜 그런 돈을 내줘?"
"그러니까 빨랑 꺼지라잖아! 너희 같은 놈들, 꼴도 보기 싫어."
가쓰는 얼굴이 시뻘게져 있었다. 컴컴한 어둠 속이었지만 눈에 핏발이 선 것까지 보였다. 굴욕감을 필사적으로 견디는 듯한눈치였다.
"그럼 내 농구 공 돌려줘." 뒤에서 준이 말했다.
가쓰가 눈을 치뜨고 발걸음을 돌렸다. 제 방으로 돌아가더니주의 농구공을 창문 밖으로 던져주었다. 자갈 위를 통통 튀어 공이 준 앞에까지 굴러왔다. 창문이 닫히고 커튼도 닫혔다.
- P39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