균형잡힌 삶을 위해서는 내면과 외부의 관심사를 절묘하게 혼합할 수 있어야 한다. 우리는 타인이 겪은 사고를 통해 드러나는 일반적인 메시지(우리가 정말로 취약하고 일시적인 존재라는 것)를 자기것으로 만들어야 한다. 하지만 그들이 겪은 구체적인 경험에 너무 깊이 몰입한 나머지 낯선 이에게 닥친 재앙을 우리 스스로에 대한 책임을 회피하는 변명거리나 수단으로 삼아서는 안 된다. 우리는 뉴스가 늘 우리 앞에 갖다놓고자 애쓰는 슬픔과 고통을 명확히 인식하는 한편, 거기에 고착되지 않도록 해야 한다.
- P236

저널리즘은 이런 분리 상태에 얼마간 책임이 있다. 저널리즘이야말로 문화라는 흐름의 맨 앞에 앉아 있기 때문이다. 다른 분야에서와 마찬가지로, 여기서도 저널리즘이 우리에게 제공하는 정보는 혼란스러우리만치 뒤죽박죽이다. 이는 저널리스트가 잘 숙고된 심리적의제에 따라서가 아니라 출판, 영화, 미술관 산업의 홍보 계획에 따라 보도의 우선순위를 정하는 성향을 갖고 있어서다. 결국 비평 지면은 베스트셀러 순위나 영화 관객수 차트에 지배당하고, 다음에 무엇을 읽고 볼지 결정하는 데 오로지 대중성만이 가장 생산적인 기준인 양 돼버린다.
- P272

우리는 우리 주위를 둘러싼, 딱히 달변은 아닌 종들이 내건 훨씬 낮설고 보다 경이로운 헤드라인에 주목하기 위해 가끔 뉴스를 포기하고지내야 한다. 황조롱이와 흰기러기, 거미딱정벌레와 까만 얼굴의 매미충, 여우원숭이와 어린아이들, 우리의 멜로드라마에 별다른 관심을 보이지 않는 이 모든 생명체들은 우리의 불안과 자기도취를 상쇄한다.
뉴스가 더이상 우리에게 가르쳐줄 독창적이거나 중요한 무언가를 갖고 있지 않다는 것을 알아챌 때 삶은 풍요로워진다. 그때 우리는 타자와 상상 속에서만 연결되는 것을 거부할 것이다. 타자를 정복하고 망가뜨리고 만들거나 없애는 일을 그만둘 것이다. 아직 우리에게는 할당된 짧은 시간 속에서도 끝까지 지켜야 할 자신만의 목적이 있음을 자각하면서 말이다. - P29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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