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 수사님, 악은 수많은 얼굴로 다가옵니다. 사실 사람인 우리가그것을 식별하는 것은 은총에 의지할 뿐입니다. 그러나 한 가지 확실한 것도 있어요. 우리가 사랑하려고 할 때 그 모든 사랑을 무의미하게느껴지게 만드는 모든 폭력, 모든 설득, 모든 수사는 악입니다. 너 한사람이 무슨 소용이야, 네가 좀 애쓴다고 누가 바뀌겠어, 네가 사랑한들 아는 사람 하나도 없어.…… 속삭이는 모든 것을 경계해야 합니다.
어쩌면 옥사덕이나 남미 로메로의 피살이나 유신 혹은 광주 학살 같은것은 아직 난이도가 높은 것은 아닐지도 모르죠. 이제 악은 다른 얼굴로 우리에게 달려듭니다. 소리 없는 풀 모기처럼 우리를 각개격파하러옵니다. 그들이 우리에게 원하는 것은 단 한 가지입니다. 그것은 무의미입니다."
- P239

제가 드렸던 약속을 저는 잊지 않고 있습니다. 죽는 날까지 요한신부님을 위해 기도하겠다는 그 약속 말입니다. 저의 아이를 신부로 키우겠다는 것도요. 제 기도는 먼지보다 미약할지 모르지만어느 날 신부님의 소망이 이루어질 힘이 먼지 하나의 무게만큼 딱 모자랄 때 제 기도가 신부님께 보탬이 될 거라 믿을 뿐입니다.
- P307

"믿을 수 없었습니다. 뚜껑을 열자 침착하고 공포에 사로잡혀 있는,
그러나 너무도 위대한 사람들이 조용히 우리를 바라보았습니다. 통역이 그제야 승선해 물었지요. 죽거나 다치거나 위독한 사람이 있냐고요. 결과는 놀라웠습니다. 한 사람도 잃지 않았다는 것을 알았을 때, 아니 오히려 다섯 명의 새 생명이 태어났다는 것을 알았을 때 저는 말문이 막혀 어떤 소리도 낼 수 없었습니다. 장정도 있지만 연약한 아이도있고 노인도 있는 그를 모두가 차고 딱딱한 철판 위에서 화장실도 없고 먹을 것 하나 없이, 물 한 방울 없이 어떻게 그 사흘간의 항해를 견렸는지 저는 지금도 알지 못합니다.
영하 20도의 눈보라 치는 항구를 떠나 사흘 만에 도착한 그 나라의남쪽 항구는 영상 1도, 생명과도 같이 보드라운 바람이 불고 있었습니다. 더욱 놀라웠던 것은 거제도의 주민들이 우리 배가 도착한다는 소식을 듣고 일제히 주먹밥을 준비해 부두에 나와 있었다는 것입니다.
맑고 신선한 이 나라의 물도 함께 말입니다. 우리 선원들은 그 광경을보았습니다. 저는 생각했지요. 예수라는 이름도 없고 교회도 없고 심지어 십자가도 없는 이곳에서 진정한 크리스마스가 펼쳐지고 있다고말이지요."
- P341

"사랑은 가시지 않아요. 사랑은 가실 줄을 모르는 거니까."
슬픔도 희석되고 실은 아픔도 아팠다는 사실만 남고 잘 기억되지않지만, 사랑은 남아 있다는 것을 나는 이제 안다. 사랑은 사라지지 않는다는 것을, 젊음아 거기 남아 있어라, 하고 어느 시인이 노래했듯이나는 그렇게 말하고 싶었다. 사랑아, 언제까지나 거기 남아 있어라.
그때 종소리가 울렸다. 하늘에서 푸른 밧줄로 엮은 사다리가 쏟아져내리는 것처럼 종소리는 울렸다. 나는 걸음을 재촉했다. 이제 열 살이된 요한이의 첫 영성체 선물로 줄 목록을 생각하면서 말이다.
- P3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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