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과 마찬가지로 호주가 선택한 포용적 제도를 향한 길 역시 잉글랜드와는 달랐다. 내전과 명예혁명을 거치며 잉글랜드를 뒤흔들어놓았던 혁명이 미국이나 호주에서는 필요하지 않았다. 이들 나라의 건국 당시 상황이 사뭇 달랐기 때문이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아무런 갈등 없이 포용적 제도가 떡하니 들어섰다는 뜻은 아니다. 미국은 포용적 제도를 수립하는 과정에서 영국의 식민 지배를 떨쳐버려야 했다. 잉글랜드에서는 오랜 역사를 거치며 깊이 뿌리박힌 절대주의 왕정을 제거하려면 혁명이 필요했다. 미국과 호주에서는 그런 장애물이 없었다. 미국과 호주에서 포용적 제도가 뿌리내렸다는 것은 두나라에 산업혁명이 빠르게 확산되어 부가 쌓이기 시작했다는 의미였다. - P406

 종합해보면 프랑스군이 유럽 대륙에 큰 고통을 안겨주기는 했지만, 이들이 유럽의 형세를 획기적으로 뒤바뀌어놓은 것도 엄연한 사실이다. 유럽 대부분 지역에서 봉건질서가 자취를 감추었고 길드가 무너졌으며 군주와 제후의 절대권력 역시 송두리째 흔들렸고 경제, 사회, 정치등 모든 면에서 권력을 틀어쥐고 있던 교회마저 맥을 못 추게 되었다.
태생적 지위에 따라 인민을 불평등하게 대우했던 앙시앵레짐의 기반이 무너진 것이다. 이런 번화 덕분에 해당 지역에서 훗날 산업화가 뿌리내릴 수 있게 해준 포용적 경제제도가 수립되었다. 19세기 중엽에 이르자,
프랑스가 장악했던 지역은 거의 예외 없이 산업화가 한창이었지만 오스트리아-헝가리와 러시아 등 프랑스의 손길이 닿지 않은 지역이나, 폴란드와 에스파냐 등 프랑스의 점령 기간이 일시적이거나 제한적이었던 지역은 여전히 제자리걸음 신세를 면치 못하고 있었다. - P4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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