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란츠 황제가 산업화와 증기기관차 철도에 반대한 것은 근대 경제발달에 수반되는 창조적 파괴를 우려했기 때문이었다. 그에게 무엇보다 중요했던 것은 체제를 유지해주던 착취적 제도를 안정적으로 유지하고 자신을 지지하는 기존 엘리트층의 이권을 보호하는 일이었다. 농촌에서 도시로 노동력을 끌어들일 것이기 때문에 산업화로부터 얻을게 없었을 뿐 아니라 대대적인 경제적 변화가 자신의 정치권력에 위협을 가하리라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던 것이다. 그 결과 프란츠 황제는산업 및 경제의 성장을 막아 경제적 낙후성을 유지하려 했으며, 그런 의도는 여러모로 드러났다. 가령 오랜 세월이 흘러 전체 철 생산량의 90퍼센트를 석탄으로 뽑아내던 1883년까지도 합스부르크 영토에서는 철생산의 절반 이상을 효율성이 한참 떨어지는 목탄에 의존했다. 마찬가지로, 신성로마제국이 몰락한 제1차 세계대전까지도 직물 직조가 완전히 기계화되지 못해 여전히 수작업이 필요했다.
- P329

노예무역은 두 가지 부정적인 정치 과정을 촉발했다. 첫째, 초반에는 한층 더 절대주의적으로 변모하는 정권이 많았다. 오로지 남들을 노예로 전락시켜 유럽인에 팔아넘기는 데만 혈안이 되어 있었던 것이다. 둘째, 첫 번째 과정의 결과이면서도 역설적으로 그 정반대의 상황이 전개되었다. 전쟁과 노예무역은 궁극적으로 사하라 이남 아프리카 지역에서 그나마 유지되던 질서와 정통성 있는 정부당국을 파괴해버렸다. 노예 획득 수단은 전쟁만이 아니었다. 납치하거나 소규모 공격을 통해 포로로 붙잡기도 했다. 노예를 만들기 위해 법까지 동원하는 지경이었다. 어떤 죄를 짓든 노예로 전락시켜 징벌했다.  - P365

여전히 여러 사회과학자가 저개발 국가의 경제 문제를 고려할 때 1955년 아서 루이스가 처음 제기한 ‘이중 경제dual economy‘ 패러다임을적용한다. 루이스는 많은 후진국 또는 저개발 국가의 경제가 근대 부문과 전통 부문으로 나뉜 이중 구조로 되어 있다고 말한다. 비교적 발전한 경제 분야인 근대 부문은 도시 생활, 근대 산업, 선진 기술 사용 등과 연관된다. 반면 전통 부문은 농촌 생활, 농업, 낙후된 제도 및 기술과 연관성이 있다. 낙후된 농경제도에는 토지에 대한 사유재산권 부재를 암시하는 공동체의 토지 소유도 포함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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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발경제학자 development economist에게 ‘개발의 문제‘는 농업 및 농촌으로 대변되는 전통 부문에서 노동력과 자원을 끌어다가 산업과 도시로 대변되는 근대 부문에 투입하는 것을 의미했다.  - P372

 학술적 기반이 마련되고 아서 루이스의 이론이 확산되던 1950년대와 1960년대 남아프리카를 방문한 개발경제학자의 눈에는 원주민 자치지구와 번성하는 근대 유럽 경제시구 사이의 대조가 이중 경제 이론과 딱 맞아떨어졌을 것이다. 유럽인의 경제지구는 도시적이고 교육수준이 높았으며 근대 기술을 사용했다. 원주민 자치지구는 가난한 시골인 데다 낙후성을 면치 못했다. 노동 생산성도 굉장히 부진했고 주민은 교육도 제대로 받지 못했다. 시간을 초월한 아프리카 낙후성의 진수로 비쳤을 것이다. 이중 경제는 자연 발생적인 것도, 불가피한 필연도 아닌 유럽 식민 지배 정책의 산물이었다. 원주민 자치지구가 가난하고 기술적으로 낙후되었으며, 주민의 교육수준이 떨어지는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이 모든것은 아프리카 경제성장을 뿌리째 뽑아버리고 유럽인이 장악한 광산이나 토지에 값싸고 무지한 아프리카 노동력을 동원하기 위해 만들어진 정부 정책의 소산이다.
- P38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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