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예혁명으로 왕과 가신의 권한은 약화되었고 경제제도를 결정할 권한은 의회에 귀속되었다. 동시에 사회 각계각층이 폭넓게 참여하는 정치체제가 마련되었다. 사회 전반이 정부의 기능에 상당한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게 된 것이다. 명예혁명은 다원적 사회를 만드는 발판을 마련했고 더 나아가 중앙집권화에 박차를 가하는 계기가 되었다. 이처럼 세계 최초로 포용적 정치제도를 만들어낸 것이 바로 명예혁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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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예혁명은 이 모든 것을 바꾸어놓았다. 정부는 투자와 거래, 혁신을꾀할 만한 인센티브를 제공하는 경제제도를 채택했다. 아이디어에 대한 재산권인 특허권을 부여해 혁신을 추구할 의욕을 불러일으키는 등사유재산권도 단호하게 집행했다. 법질서도 수호했다. 잉글랜드 법을은 시민에게 적용한 것은 역사를 통틀어 전례를 찾아볼 수 없는 일이었다. 자의적 과세는 중단되었고 독점은 거의 철폐되었다. 잉글랜드 정부는 상업 활동을 적극 장려했고 국내 산업 육성에 힘썼다. 이를 위해 산업 활동 확대를 가로막는 장벽을 제거하는 한편 잉글랜드 해군을 총동원해 상인의 상업 활동을 보호했다. 사유재산권을 완연히 합리화함으로써 잉글랜드 정부는 도로망, 운하에 이어 훗날 철도에 이르기까지 산업 성장의 밑거름이 되는 사회 기간시설 건설에 박차를 가했다.
이런 토대 덕분에 사람들이 느끼는 인센티브가 완전히 바뀐 것은 물론 성장의 기틀을 마련해 산업혁명에 불을 지피는 계기가 되었다.  - P156

 그렇게 촉발된 새로운 갈등은 프랑스혁명으로 절정에 달한다. 프랑스혁명은 서유럽의 제도가 잉글랜드에 가까워지고 동유럽의 제도는 한층 더 멀어지는 또 다른 결정적 분기점이었다.
유럽 이외의 세상은 제도적으로 다른 길을 걸었다. 아메리카 대륙에서 제도적 이질성이 심화되는 계기를 마련한 것은 유럽의 식민지 건설이었다. 미국과 캐나다에서는 포용적 제도가 발달했지만, 라틴아메리카에서는 착취적 제도가 고개를 들었다. 오늘날 아메리카 대륙에서 발견되는 불평등 패턴을 설명해주는 대목이다. 라틴아메리카의 에스파냐정복자들이 만든 정치·경제적으로 착취적인 제도는 끝까지 살아남아대부분 지역을 가난에 찌들게 했다.  - P17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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