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쳐야미친다 - 벽(癖)에 들린 사람들

세상은 만만하지 않다. 그저 하고 대충 해서 이룰 수 있는 일은어디에도 없다. 그렇게 하다 혹 운이 좋아 작은 성취를 이룬다 해도 결코 오래가지 않는다. 노력이 따르지 않은 한때의 행운은 복권당첨처럼 오히려 그의 인생을 망치기도 한다.
불광불급(不狂不及)이라 했다. 미치지 않으면 미치지 못한다는말이다. 남이 미치지 못할 경지에 도달하려면 미치지 않고는 안 된다. 미쳐야 미친다. 미치려면] 미쳐라(), 지켜보는 이에게 광기(狂氣)로 비칠 만큼 정신의 뼈대를 하얗게 세우고, 미친 듯이 몰두하지 않고는 결코 님들보다 우뚝한 보람을 나타낼 수가 없다.
- P13

김득신이 한 번은 만주(晩洲) 홍석기(洪錫箕)의 집에 머물며공부하고 있었다. 홍공은 출타하고 없었고 그만 혼자 있었다. 한종이 솥을 지고 들어오는 것을 보고, 무슨 일이냐고 물었다. 종이 말했다. "빚 받을 집에서 뽑아 왔습니다." 김득신은 책을 기두어 그 길로 서둘러 돌아오려 했다. 홍공이 오는 길에 그를 보고 까닭을 물었으나 대답하지 않았다. 두 번 세 번 굳이 묻자 솥을 뽑아온 일을 가지고 대답했다. 홍공은 "이것은 내가 모르는일이다. 내 집에 과부가 된 누이가 있는데 혼자 한 일이다. 실로내 잘못이 아니다" 라고 하며 간곡히 사과해 마지않았다. 김득신은 그제서야 그만두었다.
김득신은 구당(久堂) 박상원(朴長遠)과 서로 사흘 걸리는 거리에 살았다. 몇 년 전에 아무 해 몇 월 며칠에 서로 방문하기로 미리 약속을 했었는데, 틀림없이 기일에 맞추어 이르렀다. 한 번은약속을 했는데 마침 비바람이 크게 불고 날이 늦은지라 오지 않을 것으로 생각하고 있었다. 그날 저녁에 과연 그가 이르렀다.
그 독실함이 이와 같았다.

빚 대신 가난한 집 솥을 뽑아 오는 각박함을 보고는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친구 집을 박차고 나왔다. 그 잊어버리기 잘하는 사람이몇 년 전에 한 벗과의 약속만은 잊지 않고 지켰다. 이런 독실한 품성의 바탕에서 그의 근면한 노력이 꽃을 피울 수 있었다.
- P63

글의 앞부분에서 황덕길은 김득신의 피나는 노력을 말하면서,
부족한 사람은 있어도 부족한 재능은 없다고 했다. 부족해도 끊임없이 노력하면 어느 순간 길이 열린다. 단순무식한 노력 앞에는 배겨날 장사가 없다. 되풀이해서 읽고 또 읽는 동안 내용이 골수에 박히고 정신이 자라, 안목과 식견이 툭 터지게 된다. 한 번 터진 식견은 다시 막히는 법이 없다. 한 번 떠진 눈은 다시 감을 수가 없다.
하지만 그 어려운 책을 몇 번 읽고 줄줄 외웠던 천재들의 글은지금 한 편도 전하지 않는다. 남은 것은 그런 천재가 있었다는 풍문뿐이다. 김득신은 그렇지가 않았다. 공부를 아무리 해도 성적이 오르지 않는 사람은 김득신을, 아니 그의 끝없이 노력하는 자세를 스승으로 모실 일이다.
- P65

만약 한 사람의 지기를 얻게 된다면 나는 마땅히 10년 간 뽕나무를 심고, 1년 간 누에를 쳐서 손수 오색실로 물을 들이리라.
열흘에 한 빛깔씩 물들인다면, 50일 만에 다섯 가지 빛깔을 이루게 될 것이다. 이를 따뜻한 봄볕에 쬐어 말린 뒤, 여린 아내를 시켜 백 번 단련한 금침을 가지고서 내 친구의 얼굴을 수놓게 하여, 귀한 비단으로 장식하고 고옥(古王)으로 축을 만들어 아마득히 높은 산과 양양히 흘러가는 강물, 그 사이에다 이를 펼쳐놓고서로 마주보며 말없이 있다가 날이 뉘엿해지면 품에 안고서 돌아오리라.
- 이덕무 <<耳目口心書>> 중에서 - P6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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