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선 칸트는 공리주의를 개인 도덕성의 기초만이 아니라 법의 기초로서도 거부한다. 칸트가 보기에, 공정한 헌법이라면 개인의 자유가 다른 모든 사람의 자유와 조화를 이루도록 힘써야 한다. 그것은공리를 극대화하는 것과는 관계가 없으며, 공리는 기본권 결정에 "결코 끼어들어서는 안 된다. "행복이라는 경험적 목적에 관해, 그리고행복의 구성요소에 관해 저마다 견해가 다르기 때문에 공리는 정의와 권리의 기초가 될 수 없다. 왜 그럴까? 공리를 권리의 기초로 삼는다면, 행복에 관한 여러 견해 가운데 사회가 어느 하나를 지정해야한다. 특정한 행복을 (이를테면 다수의 행복을) 헌법의 기초로 삼는다면어떤 사람은 다른 사람의 가치를 받아들여야 한다. 그렇게 되면 자기만의 목적을 추구할 개인의 권리가 무시된다. "어느 누구도 나더러타인의 기준에 맞춰서 행복하라고 강요할 수 없다. 타인의 자유를 침해하지 않는 한, 저마다 적절하다고 생각하는 방식으로 행복을 추구할 수 있기 때문이다."
- P192

공정한 헌법이 왜 진짜가 아닌 상상의 계약에서 나올까? 우선 국가가 형성된 이래 사회계약이 맺어졌다는 증거를 찾기 힘들다는 현실적 이유 때문이다. 둘째로, 도덕 원칙은 경험한 사실에서만 나올수는 없다는 철학적 이유 때문이다. 도덕법이 개인의 이익이나 욕구에 좌우될 수 없듯이, 정의의 원칙도 공동체의 이익이나 욕구에 좌우될 수 없다. 과거에 어떤 한 집단이 헌법에 동의했다는 사실만으로그 헌법이 공정하다고 말할 수는 없는 일이다.
그렇다면 어떤 상상의 계약이 이런 문제를 피해갈 수 있을까? 칸트는 그것을 간단히 "이성이라는 관념"이라 말한다. "관념이지만 의심의 여지 없이 존재한다. 그 이유는 그것이 입법자들에게, 국가 전체의 뜻을 통일한다면 어떤 법이 만들어질까를 고려해 법의 틀을 짜도록 만들 수 있기 때문" 이며, 각 시민에게는 "동의한 듯한" 의무감을 느끼게 하기 때문이다. 칸트는 집단적 동의라는 상상의 행위가
"모든 공공법의 정당성을 판가름하는 잣대" 라고 결론짓는다.
- P193

《정의론》에서, 정의를 고민하는 올바른 방법은 원초적으로 평등한상황에서 어떤 원칙에 동의하겠는가를 묻는 것이라고 주장한다.
...

롤스가 생각한 사회계약은 이처럼 원초적으로 평등한 위치에서 이루어지는 가상합의다. 롤스는 만약 그런 위치에 놓인다면, 이성적이고 자기 이익을 챙기는 우리 같은 사람들이 어떤 원칙을 선택할지 자문해보라고 한다. 그는 모든 사람이 현실에서는 자기 이익에 따라 움직인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다만 사고실험을 위해 도덕적, 종교적신념을 접어둘 뿐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떤 원칙을 택하겠는가?
우선 공리주의를 택하지는 않을 것이다. 우리는 무지의 장막 뒤에서, ‘모르긴 몰라도 나는 억압받는 소수에 속할 거야‘ 라고 생각할 수있다. 그리고 군중의 쾌락을 위해 사자 우리에 던져지는 그리스도인이 되고 싶은 사람도 없을 것이다. 완전한 자유지상주의 원칙을 선택해, 시장경제체제에서 벌어들인 돈을 죄다 소유할 권리를 인정할 사람 역시 없을 것이다. 사람들은 추론한다. 나는 빌 게이츠일 수도 있지만, 어쩌면 집 없는 사람일지도 몰라. 그러니 무일푼에다 도움도못 받을 상황에 놓일지도 모를 제도는 피하는 게 좋겠어."
롤스는 이 가상계약에서 정의의 원칙 두 가지가 나온다고 생각한다. 하나는 언론의 자유와 종교의 자유 같은 기본 자유를 모든 시민에게 평등하게 제공한다는 원칙이다. 이는 사회적 공리나 일반적 행복에 앞선다. 두 번째는 사회적, 경제적 평등과 관련한 원칙이다. 이원칙은 소득과 부를 똑같이 분배해야 한다고 주장하지는 않더라도,사회적·경제적 불평등을 인정한다면, 사회 구성원 가운데 가장 어려은 사람들에게 유리한 불평등이라야 한다고 주장할 것이다.
- P199

실제로 존재하는 방식은 마땅히 존재해야 하는 방식을 결정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
 
자연의 분배 방식은 공정하지도, 불공정하지도 않다. 인간이 태어나면서 특정한 사회적 위치에 놓이는 것 역시 부당하지 않다. 그것은 단지 타고나는 요소일 뿐이다. 공정이나 불공정은 제도가 그러한 요소들을 다루는 방식에서 생겨난다.
- P2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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