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때 외삼촌의 회상에 의하면 "하도 어려서 눈이 파랗고,
귀때기가 발갛고 여린 학생복 차림의 새신랑" 인 나의 아버지가 부른 노래가 바로 <봄의 교향악>이었다.
"봄의 교향악이 울려 퍼지는 / 청라언덕 위에 백합 필 적에 / 나는 흰나리꽃 향내 맡으며 / 너를 위해 노래 노래 부른다 / 청라언덕과 같은내 맘에 / 백합 같은 내 동무야/ 네가 내게서 피어날 적에 / 모든 슬픔이사라진다 / 더운 백사장에 밀려 들오는/ 저녁조수 위에 흰 새 될 적에 /나는 멀리 산천 바라보면서 / 너를 위해 노래 노래 부른다 / 저녁조수와같은 내 맘에 흰 새 같은 내 동무야/네가 내게서 떠돌 때에는 / 모든슬픔이 사라진다"
외갓집이 있던 마을 서쪽 뒤편에는 청라언덕은 아니지만 자그마한 산이 하나 있었다. 열아홉 아니면 스무 살인 내 아버지는 그 산을 향해서서 손을 모으고 노래를 불렀다. 봄의 교향악이 울려 퍼진다고, 네가내게서 피어날 적에 모든 슬픔이 사라진다고, 무슨 트집을 잡을까 싶어서 일거수일투족을 노려보고 있던 동네 총각들, 어린 신부의 오빠와누나를 시집보내기 싫어서 치마를 붙들고 있던 남동생에게 그 노래는일생 동안 잊혀지지 않는 노래가 되었다. - P56

교련 수업, 검열, 행군, 복장검사, 교련복, 매일 오후 다섯시 ‘국기하강식‘ 에 애국가가 끝날 때까지 부동자세로 서 있었던 것. 마찬가지로 극장에서 일어서서 부동자세를 취하지 않는 사람들에 대한 마음속 비난. ‘박통‘ 이라는 상스럽고 불온하며 불안한 단어. 텔레비전 방영 시각이 되기 직전에 나오던 군가. 유신헌법 반대 시위 때문에 휴교령이 내리자 집에 내려온 형에게 압수당한, 영영 돌려받지 못한 무협지, 어느 날 갑자기 어니언스가 ‘양파들‘ 이 되고 바니걸스가 ‘토끼소녀‘가 되었던 일. 가는 곳마다 붙어 있는 그의 글씨. 없는 데가 없는, 언제 찍었는지 변하지도 않는 그의 사진, 혼분식운동 같은 수많은 운동, 금지곡 같은 수많은 금지, 장발단속 같은 수많은 단속, 음반카 메마다 붙어 다니던 박정희 작사 작곡인 〈나의 조국〉 같은 건전가요. 시바스 리갈과 <그때 그 사람>.
박정희가 직접 헬리콥터를 타고 다니며 한 일이든 아니든, 사실이든 소문이든 나는 이런 ‘별일 아닌 것들‘ 때문에 박정희를 좋아할 수없다. 독재나 탄압, 정경유착, 지역갈등, 무차별개발 같은 큰 문제는 논외로 하더라도.  - P1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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