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학자 데이비드 케네디(David M. Kennedy)도 같은 주장을 폈다.
그는 "오늘날 미군은 용병의 색채가 짙다"고 주장한다. 이들은 자신이 대신 싸워주는 사회와는 사뭇 동떨어진 세계의 전문 유급군이라는 이야기다. 17 입대하는 사람들의 동기를 얕잡아보는 이야기가 아니다. 그가 우려하는 점은 같은 시민 가운데 비교적 소수를 고용해 대신 싸우게 해놓고 우리는 발을 뺀다는 사실이다. 이렇게 되면, 다수의 시민과 그들 이름으로 싸우는 군인 사이의 연결 고리가 끊어진다.
케네디의 연구에 따르면, "인구 비율로 볼 때, 오늘날의 현역군인수는 제2차 세계대전 때의 4퍼센트 수준이다." 그러다 보니, 정책 입안자들이 광범위하고 진지한 사회적 동의를 구하지 않고도 비교적쉽사리 국가를 전쟁으로 내몬다. "전쟁에서 땀 한 방울 흘리지 않는사회의 이름을 걸고, 역사상 가장 막강한 병력이 전투에 투입될 수있다. 이것이 오늘의 현실이다. 자원군은 거의 모든 미국인에게서 나라를 위해 목숨을 걸고 싸울 책임을 면제해준다. 이를 좋은 점이라고 보는 사람도 있지만, 같이 나눠야 할 희생을 면제해주면 정치적책임 의식이 약화되는 대가를 치르게 된다.
- P124

높은 기준을 이해하는 또 하나의 시각은 재화와 사회적 행위를 올바르게 평가하려면 그것이 추구하는 바를 따져봐야 한다는 생각에서 출발한다. 앤더슨이 대리 출산에 반대하면서, "임신이라는 사회적 행위가 마땅히 지향해야 하는 특정한 목적, 즉 어머니와 아이의 감정적 유대를 강조했다는 점을 생각해보자. 어머니에게 그러한 유대를 맺지 말라고 요구하는 계약은 임신의 본래 목적에서 벗어나기에 굴욕적이다. 그것은 "부모의 본분이라는 준거"를 "상업적 생산"이라는준거로 대체한다. 어떤 사회적 행위의 준거를 찾으려 할 때, 그 행위의 주요 목적부터 파악해야 한다는 생각은 정의에 관한 아리스토텔레스 이론의 핵심이다. 
- P139

아이를 출산하는 행위와 전쟁을 수행하는 행위만큼이나 서로 이질적으로 보이는 행위도 또 없을 것 같다. 그러나 인도의 대리 출산과앤드루 카네기가 남북전쟁에서 자기 대신 싸울 군인을 고용한 사례에는 공통점이 있다. 이 상황에서 무엇이 옳고 무엇이 그른가를 생각하다 보면, 정의의 개념을 서로 다르게 규정하게 하는 두 가지 질문에 직면한다. 자유시장에서 우리의 선택은 얼마나 자유로운가? 세상에는 시장이 존중하지 않는, 그리고 돈으로 살 수 없는 미덕과 고귀한 재화가 과연 존재할까??
- P143

칸트는 이성적 능력이 우리 능력의 전부가 아니라는 점을 분명히 인정한다. 우리는 쾌락과 고통을 느낄 능력도 있다. 그는 우리가 이성적 동물일 뿐 아니라 지각력 있는 동물이라고 말한다. 칸트가 말하는
"지각력" 이란 감각과 느낌에 반응하는 능력이다. 따라서 벤담도 좋지만, 절반만 옳을 뿐이다. 벤담은 우리가 쾌락을 좋아하고 고통을싫어한다는 사실을 알았고, 이는 옳은 이야기다. 그러나 쾌락과 고통이 "우리의 통치권자" 라는 주장은 옳지 않다. 칸트는 이성이야말로,
적어도 때로는, 통치권을 행사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이성이 우리의지를 통치할 때, 우리는 쾌락을 추구하고 고통을 피하려는 욕망에내몰리지 않는다.
이성적으로 사고하는 능력은 자유롭게 행동하는 능력과 밀접하게연관된다. 이 두 가지 능력이 합쳐져 우리는 특별한 존재, 다른 동물과 구별되는 존재가 된다. 이 능력으로 우리는 단지 식욕만을 느끼는동물에서 벗어난다.
- P153

 칸트는 기호를 충족하는 행위를 문제삼지 않는다. 다만 이때 우리는 자유롭게 행동하는 것이 아니라 외부에서 이미 결정된 내용에 따라 행동할 뿐이라는 점을 지적한다. 바닐라보다 에스프레소와 과자가 들어간 아이스크림을 먹고 싶다는 욕구는 내가 선택한 게 아니라 이미 갖고 있는 욕구일 뿐이다.
몇 년 전, 스프라이트 음료는 다음과 같은 광고 문구를 선보였다.
"당신의 갈증에 복종하라." 스프라이트는 광고에 (물론 우연이지만) 칸트의 통찰력을 담았다. 내가 스프라이트(또는 펩시콜라나 코카콜라) 캔하나를 집어들 때면, 자유가 아니라 복종을 실천하는 셈이다. 그것은내가 선택하지 않은 욕구에 반응하고, 내 갈증에 복종하는 행위다.
사람들은 흔히 천성과 교육이 행동에 미치는 영향을 두고 논쟁을벌인다.내 행동이 생물학적으로 결정된 것이든, 사회적으로 훈련된 것이든, 진정으로 자유로운 행동은아니다. 칸트에 따르면, 자유롭게 행동한다는 것은 자율적으로 행동한다는 뜻이다. 그리고 자율적으로 행동한다는 것은 천성이나 사회적 관습에 따라서가 아니라 내가 나에게 부여한 법칙에 따라 행동하는 것이다. - P1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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