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지만 피부색은 선택 사항이 아닙니다. 삶과 죽음을 가를 정도로 중요합니다. 햇빛이 강한 곳에서는 멜라닌이 있어야 살아남을 수 있듯이, 햇빛 보기 힘든 곳에서는 오히려 멜라닌이 없어야 살아남을 수 있습니다. 햇빛 보기 힘든 곳에서는 자외선이 부족한데, 우리 몸에는 약간의 자외선이 꼭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인간이 몸에서 유일하게 만들어 낼 수 있는 비타민 D를 만들기 위해서입니다. 비타민 D는 칼슘 흡수에 결정적인 역할을 하는데, 없으면 칼슘이 흡수되지 않아 뼈가 물렁해지고 형태가 일그러집니다. 비타민 D가 부족한 시기가 길어지거나 성장기의 중요한 때에 이러한 시기를 겪으면 구루병이 됩니다.
물론 뼈가 튼튼하지 않다고 죽을 정도는 아니겠죠. 그러나 가임기여성의 뼈 중에는 형태가 일그러지면 곧바로 삶과 죽음의 문제로 연결되는 곳이 있습니다. 바로 아기가 나오는 골반뼈입니다. 산모와 아기를위협하는 치명적인 증세 앞에서, 인류는 다시 멜라닌이 없는 흰 피부를 가질 수밖에 없었습니다.
이렇게 해서, 광범위한 지상의 ‘피부색 유전자 분포는 위도에 따라가지런한 형태로 정리됐습니다. 적도 부근 지역은 자외선이 비타민 D를 합성할 수 있을 정도로 1년 내내 충분히 내리쬡니다. 온대 지역은 자외선이 부족한 기간이 한 달 정도이며 냉대 지역은 자외선이 1년 내내 부족합니다. 그리고 이 지역 원주민의 피부 속 멜라닌 농도는 바로 이런 자외선 부족 정도와 대략 일치합니다. - P100

재미있게도 이 유전자들의 분포는 대륙마다 다릅니다. 검은 피부는 적도를 따라 나타나지만, 서태평양에서 사는 폴리네시아인과 적도권 아프리카인들의 피부색은 채도와 명도가 다릅니다. 둘 다 흰 피부를 만드는 유전자지만, 북서유럽인들의 피부색 유전자와 동북아시아인들의 피부색 유전자는 같지 않습니다. 같은 위도에 살아도 얼마나오래전에 이주한 집단이냐에 따라, 그리고 평소 비타민 D를 음식으로얼마나 충분히 섭취하고 있는지에 따라서 달라지기 때문입니다.
- P101

흰 피부의 돌연변이는적어도 수만 년 전에는 나타났어야 합니다. 5000년은 의외로 최근입니다. 이렇게 늦게 나타난 이유는 농경의 발생과 정착입니다. 농경 이전 시대에는 자외선이 부족한 지역에 살아도 비타민 D를 합성하지 않아도 되었습니다. 비타민 D가 풍부한 식물, 해산물, 고기를 충분히 섭취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농작물에 의존하는 식생활이 정착되면서곡류와 전분류에 점점 의존하게 됐습니다. 먹을거리를 통하여 비타민D를 충분히 섭취할 수 없게 되자 멜라닌을 없애고 자외선을 이용해서비타민 D를 합성하게끔 하는 돌연변이가 유익하게 된 것입니다.
- P102

이렇게 농경은, 흔히 생각하는 것과 달리 인류에게 이롭기만 했던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인류에게 무조건 ‘잘못된 만남‘이기만 했던 것도 아닙니다. 특히 유전학의 발달은 우리에게 그동안 몰랐던 농경의 숨은 가치를 다시 일깨워 줍니다. 바로 유전자의 다양성입니다. 농경 덕분에 인구가 폭발적으로 늘자, 진화의 원동력인 유전자다양성 역시 폭발적으로 늘어난 것입니다.
- P1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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