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는 약속을 지키는 사람이었지만, 마음 한구석에는 늘 왜 주드와 이 문제에 대해 이야기해보지 않았는지, 왜 주드에게 그럴때 어떤 기분인지 말해보라고 하지 않았는지, 왜 본능이 시키는대로 감히 행동하지 못했는지 의문을 가지고 있었다. 그러니까,
왜 그냥 옆에 앉아 다리를 문질러주고, 멋대로 어긋나는 신경말단을 주물러 가라앉히려 해보지 않았을까. 대신 그는 여기 욕실에 숨어 바쁜 체하고 있다. 가장 소중한 친구 하나가 바로 저기 지저분한 소파에 철저히 홀로 앉아 산 자들의 땅으로 돌아오기위한, 의식을 되찾기 위한 느리고 슬프고 고독한 여행을 하고있는데 말이다.
- P37

이런 평일 저녁의 지하철 여행에서 그가 또 좋아하는 것은 빛이었다. 지하철이 덜커덩거리며 다리를 건너가고 있으면, 빛이 마치 살아 있는 생물처럼 차량을 가득 채우고는 사람들의 얼굴에서 피로를 씻어내고 그들이 처음 이 나라에 왔을 때의 얼굴,
미국을 정복할 수 있을 것만 같았던 젊은 시절의 얼굴을 드러냈다. 그는 그런 빛이 시럽처럼 차량 안으로 퍼져나가면서 깊게 팬 이마의 주름을 지우고, 희끗희끗한 머리를 황금빛으로 물들이고, 번쩍거리는 싸구려 옷감의 광택을 매끄럽고 은은하게어루만지는 광경을 지켜보곤 했다. 그러다 해가 서서히 넘어가고 열차가 무심하게 덜커덩거리며 멀어져가면, 세상은 다시 평소의 슬픈 모양과 색깔로, 사람들은 평소의 슬픈 얼굴로 돌아왔다. 마치 마법사가 지팡이로 건드리기라도 한 것처럼 잔인하고 갑작스러운 변화였다. - P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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