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도시의 도서관에 있는 낡아 빠진 사전에 검은색과 흰색으로 ‘괴물‘ 이라는 단어가 쓰여 있었다. 모양이나 크기가 딱 묘석같이 생겨서 나 이전에 무수히 많은 사람들이 참고한 흔적이 남은 누런 책장의 케케묵고 낡은 책. 볼펜 낙서 자국이며 잉크 얼룩, 말라붙은 핏자국.
과자 부스러기 따위로 지저분했고, 가죽 장정은 쇠사슬로 열람대에묶여 있었다. 여기 과거의 집적된 지식을 담은 동시에 현재의 사회적상황을 생생히 제시하는 한 권의 책이 있다. 쇠사슬은 일부 도서관방문객들이 사전을 돌려 보기 위해 집어 갈 수도 있다는 암시를 담고있었다. 그 사전에는 영어로 된 모든 단어가 담겨 있지만 사슬이 아는 단어는 극소수에 불과할 것이다. 아는 단어라곤 ‘도둑‘ 이나 훔치다. 기껏해야 ‘절도를 당한‘ 정도겠지. 그 사슬이 말하는 건 ‘가난‘.
‘불신‘, ‘불평등‘, ‘타락‘, 그런 것들일 게다. 나, 칼리 자신이 지금이 사슬을 손에 꼭 잡고 있다. 그녀는 그 단어를 뚫어져라 응시하면서 사슬을 손에 감고 손가락이 하얘지도록 세게 잡아당긴다. 괴물,
여전히 그 자리에 있다. 꼼짝도 않는다. 낡은 화장실 벽에서도 이런단어는 본 적이 없었다. 웹스터 사전에도 낙서가 있지만 유사어는 낙서로 끄적거린 게 아니었다. 유사어는 공적인 권위를 인정받은 것이다. 그것은 그 사회의 문화가 그녀와 같은 인간에게 내린 판결이었다. 괴물. 그녀가 바로 그거였다. - P241

마침내 도시를 게이들의 중심지, 동성애자들의 중심지로 만들었다.
(삶의 예측 불가능성을 증명하는 사례를 하나 더 들자면, 이 군산 복합지가 낳은 직접적인 결과가 다름 아닌 카스트로 [동성애자들의 거주 지역)다.) 그 해군들의 마음을 끌었던 것이 바로 안개였는데, 안개는 바다가 지니는 부유(浮游) 랄까, 익명의 느낌을 이 도시에 부여했고, 이런 익명성 덕분에 개인적인 변신이 한결 수월했던 것이다. 안개가 도시를 덮은 건지 도시가 안개 위를 표류하는 건지 분간이 안 될 때도 있었다. 1940년대로 거슬러 올라가면, 안개는 해군들이 하는 짓을 동료시민들의 눈으로부터 감춰 주었다. 안개는 거기서 그치지 않았다.
1950년대가 되자 안개는 비트족의 머리 위에 카푸치노 거품처럼 넘실거렸다. 1960년대 안개는 물파이프에서 오르는 마리화나 연기처럼 히피들의 정신을 혼미하게 했다. 칼 스테퍼니데스가 도착한 1970년대에는 안개가 공원의 새 친구들과 나를 숨겨 주었다. - P294

"안녕, 엄마." 내가 입을 열었다. "저 왔어요."
나는 그녀를 맞으러 앞으로 걸어 나갔다. 가방을 내려놓고 다시 고개를 들어 보니, 어머니의 얼굴 표정이 달라져 있었다. 그녀는 몇 달동안 이 순간을 고대해 왔다. 이제 그녀의 가느다란 눈썹과 입 꼬리가 올라가면서 창백한 뺨에 주름이 번졌다. 의사가 끔찍한 화상을 입은 아이의 붕대를 푸는 모습을 지켜보는 어머니의 얼굴이 저럴까. 환자의 머리맡에서 희망을 가장하고 있는 얼굴, 그 얼굴은 내가 알아야할 것들을 모두 전해 주고 있었다. 어머니는 사태를 받아들이려 노력할 것이다. 그녀는 나에게 일어났던 일들로 말미암아 가슴이 무너지는 고통을 겪었지만 나를 위해 견뎌 낼 것이다.
- P36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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