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도시의 도서관에 있는 낡아 빠진 사전에 검은색과 흰색으로 ‘괴물‘ 이라는 단어가 쓰여 있었다. 모양이나 크기가 딱 묘석같이 생겨서나 이전에 무수히 많은 사람들이 참고한 흔적이 남은 누런 책장의 케케묵고 낡은 책. 볼펜 낙서 자국이며 잉크 얼룩, 말라붙은 핏자국,
과자 부스러기 따위로 지저분했고, 가죽 장정은 쇠사슬로 열람대에묶여 있었다. 여기 과거의 집적된 지식을 담은 동시에 현재의 사회적상황을 생생히 제시하는 한 권의 책이 있다. 쇠사슬은 일부 도서관방문객들이 사전을 돌려 보기 위해 집어 갈 수도 있다는 암시를 담고있었다. 그 사전에는 영어로 된 모든 단어가 담겨 있지만 사슬이 아는 단어는 극소수에 불과할 것이다. 아는 단어라곤 ‘도둑‘ 이나 훔치다‘, 기껏해야 ‘절도를 당한‘ 정도겠지. 그 사슬이 말하는 건 ‘가난‘,
‘불신‘, ‘불평등‘, ‘타락‘, 그런 것들일 게다. 나, 칼리 자신이 지금이 사슬을 손에 꼭 잡고 있다. 그녀는 그 단어를 뚫어져라 응시하면서 사슬을 손에 감고 손가락이 하얘지도록 세게 잡아당긴다. 괴물.
여전히 그 자리에 있다. 꼼짝도 않는다. 낡은 화장실 벽에서도 이런단어는 본 적이 없었다. 웹스터 사전에도 낙서가 있지만 유사이는 낙서로 끄적거린 게 아니었다. 유사어는 공적인 권위를 인정받은 것이다. 그것은 그 사회의 문화가 그녀와 같은 인간에게 내린 판결이었다. 괴물. 바로 그녀가 그거였다. - P24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