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미놀의 우리 집에선 미처 탄생을 기뻐할 겨를도 없이 돌연 죽음의 예감을 맞이해야 했다.
데스데모나가 부엌 바닥에서 뒤집어진 커피 잔 옆에 쓰러진 레프티를 발견했던 것이다. 그녀는 남편 옆에 무릎을 꿇고 그의 가슴에 귀를 대 보았다. 심장 소리가 들리지 않자 그녀는 울부짖으며 남편의 이름을 불러 댔다. 그 울음소리가 부엌의 딱딱한 기물, 즉 토스터와 오븐, 그리고 냉장고에 부딪혀 메아리쳤다. 결국 그녀는 남편의 가슴위로 쓰러졌다. 그러나 적막 속에서 데스데모나는 이상한 감정이 피어오르는 걸 느꼈다. 그 감정은 그녀를 사로잡고 있는 두려움과 슬픔을 비집고 점점 퍼져 갔다. 마치 부글부글 가스가 차오르는 느낌 같기도 했다. 그 감정의 정체를 깨달았을 때 그녀는 번쩍 눈을 떴다. 그것은 행복감이었다. 눈물이 줄줄 흘러내리고, 남편을 앗아가려는 하느님이 원망스러웠다. 그러나 이 같은 자연스러운 감정의 한편으로 전혀 얼토당토않은 안도감이 드는 것이었다. 최악의 사태가 발생했다. 이게 바로 최악의 사태였다. 할머니의 생애 처음으로 이젠 더 이상 아무 걱정할 거리가 없어진 것이다. - P319

마음속으로 할아버지는 점점 더 젊어졌고 실제로는 점점 더 늙어갔다. 그래서 할아버지는 자기가 들 수 없는 것들을 들려고 했고, 자기가 올라갈 수 없는 계단을 올라가려고 끙끙댔다. 넘어지는 일이 비일비재했고, 물건들은 박살이 났다. 이럴 때 할아버지를 일으키던 할머니는 남편의 눈에 순간적으로 또렷한 기운이 스쳐 가는 것을 보곤했다. 마치 현재를 마주하기가 겁이 나서 과거를 다시 사는 것처럼 연극을 하고 있는 듯한 눈빛. 그러고 나면 할아버지는 울기 시작했고, 할머니는 옆에 주저앉아 울음이 그칠 때까지 할아버지를 안아 주었다.
- P394

"난 자야겠다." 할머니가 같은 말을 반복했다. 그러고는 돌아서서안으로 들어갔다. 침대 옆에는 할머니의 누에 상자가 뚜껑이 열린채 놓여 있었다. 그날 아침 할머니는 할아버지의 결혼 화관을 꺼내 함께 묻기 위해 잘라 내었던 것이다. 할머니는 잠시 상자 안을 들여다보고는 뚜껑을 닫았다. 그러고는 옷을 벗었다. 검은 드레스를 벗어좀약이 가득 들어 있는 의류함에 던졌다. 신발은 페니[대규모 소매 유통브랜드] 상자에 도로 넣었다. 잠옷을 입고 팬티스타킹을 욕실에서 빤다음 샤워대에 널었다. 그런 다음 오후 3시밖에 안 되었지만 할머니는 침대에 들었다.
그 후 8년 동안 매주 금요일 목욕하는 날을 제외하고 할머니는 절대 바깥으로 나오지 않았다.
- P3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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