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롤로그

나는 지금 헛간 옆 버려진 빨간 기차간 위에 서 있다. 머리카락이 세차게 부는 바람에 날려 얼굴을 때리고, 열린 셔츠 목 사이로 들어온 한기가 온몸으로 퍼져 나간다. 산에 이렇게 가까워지면 돌풍이 세다. 마치 산꼭대기가 숨을 내쉬는 것처럼, 저 아래 보이는 계곡은 바람의 영 향이 미치지 않아 평화롭다. 그러나 우리 농장은 춤을 춘다. - P11

아버지가 해주는 이야기는 모두 우리 산, 우리 계곡, 우리가 사는 아이다호의 황량한 작은 땅덩어리에 관한 것이었다. 아버지는 내가 산을 떠나 바다를 건너고 대륙을 지나 낯선 곳에 섰을 때, 지평선 끝까지봐도 인디언 프린세스를 찾을 수 없는 곳에 섰을 때, 그때는 어떻게 해야 할지에 대해서는 한 번도 이야기해 주지 않았다. 집에 돌아올 시간이라는 신호를 어떻게 찾아야 하는지 아버지는 한 번도 이야기해 주지 않았다.
- P14

타일러 오빠의 죄책감은 엄청났다. 오빠는 사고가 전적으로 자기책임이라고 생각했고, 그 후로도 오래도록 여러 번 해가 바뀐 후에도 모든 결정, 모든 결과, 모든 반향 들이 모두 자기 탓이라고 생각했다.
그는 그 순간과 그로 인한 모든 결과가 오로지 자기 것이라고 느꼈다.
마치 시간 자체가 그 순간, 우리 스테이션왜건이 길에서 벗어난 그 순간에 시작됐고, 자기가 열일곱의 나이로 운전을 하다가 깜빡 잠이 든 그 순간 이전까지는 어떠한 역사도, 문맥도, 주체도 없었던 것처럼, 지금까지도 엄마가 아무리 하찮은 일이라도 조금만 뭔가를 잊어버리거나 하면 오빠의 눈에는 그 표정이 떠오른다. 
...

삶을 이루는 모든 결정들, 사람들이 함께 또는 홀로 내리는 결정들이 모두 합쳐져서 하나하나의 사건이 생기는 것이다. 셀 수 없이 많은 모래알들이 한데 뭉쳐 퇴적층을 만들고 바위가 되듯이. - P74

돌이켜보면, 바로 그것이 내 배움이요 교육이었다. 빌려 쓰는 책상에 앉아 나를 버리고 떠난 오빠를 흉내 내면서 모르몬 사상의 한 분파를 이해하려고 노력하면서 보낸 그 긴긴 시간들 말이다. 아직 이해할 수 없는 것들을 참고 읽어 내는 그 끈기야말로 내가 익힌 기술의 핵심이었다.
- P1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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