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테이는 점점 대중의 영웅이 되었고 이탈리아에서 가장 각광받는 인사가되었다. 그는 전후 이탈리아의 과제인 반파시즘, 국가의 재건과 부흥을 구체화했다. 그는 구세력의 지원 없이 자수성가한 새로운 인물의 출현을 상징했다. 마테이는 이탈리아 국민에게 안정된 석유 공급을 약속했다. 이탈리아는 자원 빈국이었다. 이탈리아는 석유가 전쟁의 역전패를 포함하여 모든 액운의 원인이라고 인식하고 있었다. 마테이는최소한 에너지 부문만큼은 문제를 해결하려고 했다. 대중의 갈망을 치유하는 방법을 알고 있던 그는 국민의 자존심에 호소했다. AGIP는 이탈리아의 모든 도로 및 고속도로 변에, 외국 경쟁사의 것보다 크고 멋진 주유소를 건설했다. 그 주유소들은 자체 식당도 갖고 있었다.

마테이는 이런 상황을 이용해 1957년 봄과 여름에 걸쳐 이란과 전례없는 협정을 체결했다. 그 협정은 이란의 새로운 지위와 국왕의 야망이모두 고려된 것이어서, 국왕은 정부를 움직여 협정을 추진했다. 협정 조건에 의하면 국영 이란 석유회사는 ENI의 동업자인 동시에 지주권자이다. 결과적으로 이란이 이익의 75%를 가져가고 ENI가 25%를 갖는것이 되어 50 대 50 협정이 깨졌다는 의미다. . 폴 게티가 이미 경험했듯이 후발 참여자가 게임에 들어갈 때는 더 많은 비용을 치러야 했다.

 페레스 알폰소는 석유 이권 임대에 대한 정부의 지분을 늘렸을 뿐 아니라 석유회사가갖고 있던 생산·판매에 관한 권한을 국가로 이전했다. 그는 "석유를 너무 싸게 파는 것은 새로운 유전을 개발하려는 의욕을 감소시키고 재생할수 없는 자원을 조기에 소모시키는 결과를 초래하므로 소비자에게 이롭지 않다. 산유국의 석유는 국가의 자원이고 그 이익은 현재뿐만 아니라 미래 세대에도 귀속되어야 한다. 석유에서 나오는 부나 자원은 낭비되어서 안 되며, 그로 인한 수입은 폭넓게 국가 발전에 이용되어야 한다. 외국 회사가 아니라 자원을 소유한 국가가 생산이나 판매에 대해 결정권을가져야 한다. 이 귀중한 자원의 잠재 가치를 인간이 마구 훼손해서는 안된다"라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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