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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나 - 마스다 미리 에세이
마스다 미리 지음, 이소담 옮김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24년 1월
평점 :
일상을 솔직하고 담백하게 표현하는 마스다 미리의 신간 에세이라 큰 기대를 안고 읽었다. 이번 작품은 작가의 어린 시절을 소환하여 특유의 따뜻한 시선으로 풀어냈는데 색다른 시선으로 나의 어린 시절을 만나게 해주고 몽글몽글한 감정들을 마음껏 느끼게 해준다. 책은 봄, 여름, 가을, 겨울로 나뉘어 구성되어 있다. 각각의 에피소드들은 소소하고 특별하지 않은 기억들이지만 아이들의 마음속엔, 그들의 세상 속엔 어떤 것들이 있는지 생생하게 묘사하고, 아무것도 몰라서 철이 없어서가 아니라 너무나 순수해서 엉뚱한 것이라는 것을 예쁘게 보여주고 있어 따뜻한 미소와 함께 잃어버렸던 소중한 기억들을 되찾아준다.
개미 왕국의 개미들을 가만히 지켜보는데 기분이 이상해졌다.
내가 개미를 보는 것처럼 아주 커다란 사람이 나를 위에서 보고 있다면?
쪼그리고 앉은 채 위를 올려다봤지만 커다란 사람은 보이지 않았다.
<작은 나>p126
작가의 너무나 개인적인 글은 희한하게도 나의 과거와 닮아있다. 너무나 평범해서 잊혀졌던, 내 기억으론 그리 좋지 않았던 이야기들이 마스다 미리의 글에는 다르게 표현되어 있다. 인상적이었던 문장은 이런 것들이다. 밤에 피리를 불면 뱀이 나온다는 친구의 말에 절대로 피리를 불지 않겠다고 하면서도 속으로는 누군가 밤에 피리를 불어 버려서 뱀들이 구불구불 기어 오는 모습을 보고 싶기도 했다고. 어린 마스다 미리는 꽤 용감했던 것 같다. 나는 절대 뱀들이 기어 오는 모습을 보지 못할 것 같은데. 전설의 고향도 귀신이 나올 즘엔 언제나 이불을 뒤집어썼으니까. 그래도 비슷한 점도 있었다. 수박씨를 먹으면 수박이 배에서 자란다는 말에 무서웠다고. 나 역시 그런 적이 있었다. 혹시나 수박이든 껌이든 뱃속에서 자라날까 걱정했던 일들이 떠오른다. 지금 생각해 보면 너무나 귀여운 발상인데 그땐 정말 그럴 것만 같아 걱정이었다.
본 적 없는 외국 동전 초콜릿.
이걸 외국에 가지고 가면 외국 사람은 진짜 돈이라고 착각하겠지.
나중에 초콜릿인 걸 알면 놀라겠다고 생각하니 재미있었다.
밤이 왔다. 다들 잠든 후 집에 도둑이 들지도 모른다.
그러면 이 초콜릿을 진짜 외국 동전인 줄 알고 훔쳐 갈지도 모른다.
<작은 나>p137
선생님이 너무 좋았던 그래서 잘 보이고 싶었던 마음도 기억났다. 작가 역시 선생님이 건넨 작은 칭찬에 감동했고, 선생님이 실망하실까 봐 싫다는 말을 하지 못했다. 초등학교 때 전근 가신 선생님댁에 친구들과 방문했던 일, 학년이 바뀌어 담임선생님과 이별할 때 울었던 일, 같은 아파트에 담임선생님이 살아서 우쭐댔던 일들로 마음이 풍성해진다. 마지막으로 반창고 에피소드는 정말 나의 과거 그대로였다. 붕대를 감고 온 반 친구가 부러웠는데 마침 작은 상처가 손에 났고, 반창고로 충분했지만 집에 있던 붕대를 둘둘 감고 신나했던 기억 말이다. 나의 경우는 꽤 커서까지 이어졌다. 깁스나 목발을 한 모습이 부러워 그때마다 나도 하고 싶다고 말하곤 했었다. 오죽하면 가짜로라도 해줘야겠다고 부모님도 절레절레하셨으니. 지금은 혹시라도 다칠까 봐 벌벌대는데 어린 내가 우습기도 하고 귀엽기도 하다.
나이를 먹으면서 점점 호기심은 줄고 새로운 것을 봐도 시큰둥해지는 나를 발견하곤 한다. 이러면 안 되는데 하면서도 어느새 익숙한 것들만 곁에 두고 있다. 삶이 관성대로 흘러가는 것을 막으려면 마음을 말랑말랑하게 해주는 것들과 함께해야 한다. 귀엽고 사랑스러운 마스다 미리의 책처럼.
딱딱하게 굳어져 가고 있다면, 낭만 있게 살고 싶다면 이 책을 읽어보시길 추천드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