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피엔스의 뇌 - 더 좋은 삶을 위한 심리 뇌과학
아나이스 루 지음, 뤼시 알브레히트 그림, 이세진 옮김 / 윌북 / 202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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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들어 뇌과학 책을 자주 찾는다. 인생의 많은 문제들이 상황이나 환경 또는 성격이나 정신력이 원인이라 생각했던 과거와 달리, 우리의 '뇌'와 긴밀히 연결되어 있다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일상의 고민이나 문제뿐만 아니라 우리가 하는 모든 일, 모든 말, 모든 생각이 '나'의 의지가 아닌 '뇌'의 작용으로 벌어진다. 때문에 뇌에 대해서 더 많이 알아야 한다. 그래야 '나'를 이해하고 보호할 수 있다.



<사피엔스의 뇌>는 뇌를 이해하여 더 나은 일상을 만들고자 하는 사람에게 필요한 심리 뇌과학 책이다. 앞부분에는 뇌과 신경과학의 기원에 대하여 아주 간단하게 소개하고, 대부분은 주체적인 삶과 행복에 관한 마음의 원리에 대해 쉽고 재미있게 풀어놓았다. 창의적인 사람의 뇌에는 어떤 일들이 벌어지는지, 스트레스가 나를 파괴하는 못하게 하는 방법은, 아름답지 않아도 사랑할 수 있을까, 불현듯 데자뷔를 느끼는 순간, 뇌가 젊어지게 하는 운동법 등 삶에서 겪는 23가지 주제를 깊이 있게 다루고 있다.



"창의성은 독창적이고 혁신적이며 예기치 못한 일, 그러면서도 요긴하고 적절한 일을 해내는 능력이다."p066

늘 창의적인 능력과는 거리가 멀다고 생각했었는데 책은 창의성이 우뇌의 산물이 아니고, 창의성도 계발되고 학습될 수 있다는 사실을 입증한다. 창의성은 우뇌라는 특정 영역과 관련되지 않으며 좌우 반구에 존재하는 수십억 개의 뉴런과 시냅스 사이의 다양한 소통 과정에서 비롯된다는 것이다. 또한 창의성에는 자유로운, 독창적인 면이 있으면서도 이미 존재하는 것을 요긴하고 적절하게 혼합하는 능력이기도 하다는 것. 즉 무에서 유를 만들어내는 게 창의성이 아니라 목표를 위해 조절하고 제어하는 것도 창의성인 것이다. 따라서 창의성은 경험과 훈련을 쌓으면 발전 가능하다. 뇌가 다양한 정보들과 더 많이 연결돼야 창의성은 무럭무럭 자라날 수 있으니 좀 더 적극적으로 움직이어야 한다, 책을 읽어야 한다. 주위 환경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


"외국어 구사는 집중적인 두뇌 활동이기 때문에 인지 능력과 정신의 유연성을 지켜준다."p124

국적이 다른 부모를 둔 아이는 서로 다른 언어를 배우기 때문에 혼란스럽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해본 적이 있다. 결론부터 말하면, 전혀 그렇지 않다고 한다. 두 언어를 동시에 습득해도 말을 익히는데 문제가 없다. 오히려 더 빨리 배우고 이해력, 논리력도 발달한다고 한다. 아동뿐 아니라 성인들에게도 이롭다. 이중언어를 계속 사용하는 성인들은 인지적으로 굉장한 장점을 얻게 된다. 기억력에 도움이 되고, 알츠하이머가 발병해도 증상이 경미했다는 연구결과가 나왔다고 하니 치매예방을 목표로 고스톱을 한다면 그보다는 영어 단어 공부가 훨씬 낫지 않을까 싶다.



"스트레스를 자각하는 방식이 스트레스가 우리에게 미치는 해로움의 정도를 결정한다."p171

스트레스라는 말만 떠올려도 스트레스다. 하지만 이런 관점이 문제인 거지 스트레스는 너무나 자연스러운 생리적 반응이다. 책은 스트레스가 생존을 위해 도움이 되는 것이라고 설명한다. 무조건 피해야 하는 것이 아니라 위험들을 처리하고 감정 조절을 잘해야 한다는 준비 태세를 갖추는 것으로 스트레스를 바라봐야 한다고 강조한다. 심장이 뛰고, 소화가 안되고, 근육이 경직되면 바꿔 말해 스트레스가 발생하면 진정시키면 된다. 수면의 질을 높이고, 마음을 차분히 하는데 힘쓰고, 소화가 잘 되는 음식을 먹으면 된다. 문제도 해답도 모두 몸에 있는 것이다. 스트레스를 바라보는 시각만 바꾸면 건강에 큰 영향을 받지 않게 된다.



이렇게 재미있게 뇌과학을 읽을 수 있다니 꽤나 즐겁고 유익한 시간이었다. 인간의 뇌 속의 이야기가 궁금하신 분이라면 일독을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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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른 꽃의 나라 영덜트 시리즈 1
프랜시스 호지슨 버넷 지음, 실(Yssey) 그림, 조현희 옮김 / 희유 / 2024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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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끔 어린 시절에 좋아했던 동화책이나 만화 영화들을 찾곤 한다. 그때의 감성이 지금도 남아있는지 궁금하기도 하고, 어떻게든 그때의 추억을 소환해 나에게도 순수했던 어린 시절이 있었다고 일깨우고 싶다. 그러면 적어도 책을 읽는 동안만큼은 세상사에 차갑게 얼어붙은 마음이 따뜻하게 녹아 희망이란 꿈을 꾸게 될 수도 있지 않을까 싶어서다.


<푸른 꽃의 나라>는 어린 시절 가장 좋아했던 동화<소공녀>의 작가가 쓴 또 다른 동화책이다. 어른이 되어서 만났지만 이야기의 감동과 교훈 덕분에 마음이 맑게 정화되는 듯 느껴졌다. 물론 틀에 박힌 어른의 시선으로 본다면 상투적이고 진부하게 읽힐지도 모르겠다. '절망 안에 희망이 있다', '선함이 악함을 이긴다', '사랑과 희망은 소중하다' 등의 메시지를 직설적으로 말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결말 역시 특별한 갈등구조도 없이 쉽게 해결되어 싱겁게 보일 수도 있다.


이렇게 단순한 이야기 구조와 익숙한 교훈적인 메시지가 아쉽게 느껴질 수도 있지만 다르게 생각하면 동화만이 주는 순수한 매력으로 긍정적으로 받아들여지기도 한다. 책의 이야기 속으로 들어가 보자. 한 암울한 왕국이 있다. 폭정에 시달려 절망에 빠진 백성들은 당장 먹고 살 궁리 말고는 살아갈 이유도 희망도 없다. 그곳에 왕자가 태어났고, 현명한 여왕은 아이를 자신의 참된 스승에게 맡겨 깊은 산속에서 그의 현명함과 지혜를 배우게 한다. 스승은 왕자에게 자연과 벗 삼아 사는 삶을 경험하게 하고, 선량함과 아름다움을 가르쳐 세상의 경이로움과 완전무결한 평화가 무엇인지 알려준다. 어느덧 왕자는 성인이 되어 백성들의 왕으로 즉위하고, 그들을 위해 '푸른 꽃의 법'을 선포한다. 개개인 모두가 푸른 꽃을 심고 가꾸고 보살펴야 한다는 것. 많은 백성들은 꽃을 피우지 못할까 봐, 그 결과 나중에 세금을 더 많이 낼까 봐 겁내고 두려워했지만 시간이 흘러가면서 마법 같은 일이 벌어졌다. 백성들은 조금씩 걱정이 헛된 일임을 깨닫게 되었고, 새싹이 모습을 드러내면서 진심으로 웃게 되고 명랑해지게 되었다. 푸른 꽃의 마법이 왕국 전체를 바꿔 버린 것이다.



그대는 경이로움으로 가득 찬 세상의 일부이다.

어린 왕이여, 항상 고개를 높이 들고 걷는 것을 잊지 말라.

하늘을 올려다볼 때마다 그대 자신도

이 놀라운 세상에 속한다는 사실을 떠올려라.

<푸른 꽃의 나라> p042



꽃을 심고, 가꾸는 것이 마법이라 부를 일일까. 이미 세상은 마법으로 가득한 데 우리가 못 보고 있는 것이 아닐까. 책은 추악한 것을 마음속으로 채우면 추악한 세상에 살게 되고, 아름다운 생각으로 가득 채우면 아름다운 세상 속에 살게 된다고 말하고 있다. 세상에 분노만큼 헛된 것은 없다. 남을 원망하고 탓 하면 결국 남는 것은 절망과 체념뿐이다. 눈앞의 먼지와 오물만 보고 살면 그게 세상의 전부라 생각하지만 고개를 들어 하늘을 보면 먼지와 오물이 얼마나 하찮은 것인지 알게 된다. 하늘의 별로 가득 찬 마음에는 먼지와 오물들이 있을 곳은 존재하지 않는다.



책을 읽으면서 동화 같은 삶, 순수한 시선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게 정말 어려운 일일까 생각해 봤다. 어쩌면 '그저 행복하기'를 선택하면 되지 않을까. 우울하고 어두운 것들을 보는 시간들을 줄이고, 조화롭고 아름다운 것들로 몰입한다면. 꽃을 심고 가꾸듯 정성을 들여 일상의 행복을 가꾼다면 동화 같은 삶이 가능하지 않을까 희망해 본다. 인생에는 어떠한 목표도 의무도 없다. 그저 행복하기만 하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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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소모하지 않는 현명한 태도에 관하여
마티아스 뇔케 지음, 이미옥 옮김 / 퍼스트펭귄 / 2024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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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해보이려고, 능력 있어 보이려고,

당신의 에너지를 낭비하지 마라.

과장된 포장은 결국 벗겨지기 마련이다.

그저 단단한 땅 위에서 

당신이 가진 보폭과

당신의 속도대로 걸어가기를 응원한다.

<나를 소모하지 않는 현명한 태도에 관하여>P148





'이거다!'싶은 책을 만났다. 앞으로의 삶의 태도는 이 책으로 종지부를 찍고 싶을 정도다.

삶의 가치가 '남보다 나은, 남과는 다른'에서 '조용한 행복'으로 변화된 지금, 이 책은 원하는 삶을 살려면 어떤 태도를 갖고 어떻게 실천해야 하는지를 확실하게 알려준다. 핵심 키워드는 '겸손'이다. 상투적이라 생각할 수 있지만 전혀 그렇지 않다. 저자는 겸손이야말로 모든 가치 중에 가장 현명한 태도라고 말하면서 삶을 살아가는 데 있어 만족감을 느낄 수 있는 자세이자 우리를 가장 편안하게 해주는 가치라고 강조한다. 겸손으로 우리는 보여주기 위한 삶이 아닌 '조용히 나를 지키는 삶'을 살 수 있다. 안정되고 편안한 삶을 위해 이보다 더 좋은 방법은 없다.


책은 총 3부로 이루어져 있다. 1부의 핵심 내용은 '보여주기 위한 모든 것들과 결별하자'라는 이야기로, 뽐내고 자랑하기 급급한 세상에서 균형을 잃게 되면 나를 보여주기 위해 끊임없이 세상을 떠돌게 된다고 말한다. 저자는 경쟁에서 이기는 것이 성공한 삶이 아니라는 점을 분명히 하면서 인생은 남에게 칭찬받기 위해서가 아니라 '스스로 행복해지기 위해 사는 것'이라는 것을 확실하게 짚어주면서 자신의 삶을 새로운 시점으로 바라봐야 한다고 조언한다. 2부는 기분은 선택할 수 없어도 태도는 선택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살다 보면 외부의 평가에 스스로를 의심하게 될 때가 많은데 그럴 때에는 자신에 대해 스스로 판단하는 능력을 믿고, 남의 견해를 가려 들어야 한다는 말이다. 즉, 남들이 던진 말 한마디에 의지하지도 좌우되지도 말 것을 당부한다.


마지막으로 3부에서는 드러내지 않아도 빛나는 현명한 삶의 방식인 '겸손'에 대한 원칙들을 소개한다. 핵심을 추려보면 잘남을 과시하면 잠깐은 우쭐하지만, 불안함과 초조함이 남는데 상대를 배려하고 나를 낮추면 잠깐은 밑지는 것 같아도 내내 편안할 수 있다는 것. 결국 겸손은 상대보다는 나를 위해 꼭 필요한 태도라는 것이다. 요점을 정리해 보면 겸손한 태도는 외부의 인정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고, 타인을 배려하는 동시에 자의식을 보여줄 수 있고, 드러내지 않아도 알아보는 사람들과 연결될 수 있고, 관심을 끌지 않으니 여유와 평온함을 유지할 수 있다. 하나 더, 약점을 드러내고 뽐내지 않으니 상대방을 긴장하게 하지 않아 좋은 관계를 유지할 수 있다.


치열함을 강요받고 드러내야 인정받는 세상에서 절제와 겸손은 루저로 가는 지름길처럼 여겨지기도 한다. 하지만 이 책을 읽고 흔들리지 않기로 다짐했다. 남이 정한 경계로 나를 가두지 않기로, 나는 나 스스로 경계를 정할 것이라고. 더불어 소박한 행동이 나를 과소평가하게 만들더라도 오히려 잘 된 거라고 생각을 고쳐먹을 것이다. 남들이 기대 안 하면 내 뜻대로 자유롭게 살 수 있고, 좋은 결과를 낼 땐 기대 이상의 평가도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니 한발짝 뒤에 물러서서 '과소평가 받는 즐거움'을 누리며 소박하게 사는 것이 내가 바라는 '조용히 만족하며 사는 삶'이 아닐까 싶다.


정말 그렇게 살아야지 마음먹게 만드는 책이다. 일상에서 부질없는 일에 흔들릴 때마다 곁에 두고 곱씹으며 다잡아 볼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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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의 모든 과학 - 빅뱅에서 미래까지, 천문학에서 생명공학까지 한 권으로 끝내기
이준호 지음 / 추수밭(청림출판) / 2024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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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과 몇백 년 전 우리는 지구가 우주의 중심인 줄 알았습니다.

인간들은 정말 작은 우물 안의 개구리였던 거죠.

그리고 이제 허블 같은 과학자들의 활약으로

우물 위로 밀어 올려져 완전히 새로운 세상을 보게 된 겁니다.

<세상의 모든 과학>p411




어릴 적 과학이라는 학문은 일상과 전혀 상관없다고 여겼고, 미래의 삶에도 상관없을 분야라고 생각했다. 상대성 이론이며 만유인력의 법칙이 사는데 무슨 도움이 될까 싶었다. 그런데 뒤늦게 철학에 관심을 갖게 되고, 존재의 본질을 들여다보니 그동안 세상과 나를 바라봤던 관점의 모순을 알게 되었고, 과학적 사고의 중요성을 깨닫게 되었다. 그래서 나름 유명하다는 과학도서를 읽어보기도 하고, 유튜브로 귀동냥도 해보았지만 과학과의 거리감은 쉽사리 좁혀지지가 않는다. 과학을 이해하기에 나의 기초지식이 부족한 탓이다.


드디어 나에게 딱 맞는 과학도서를 만났다. 과학의 역사와 현재를 재미있게 알려주는 입입문서라 할 만한 책이다. <세상의 모든 과학>은 제목처럼 빅뱅에서 미래까지, 천문학에서 생명공학까지 어렵고 복잡한 이론은 모두 걷어내고, 우리가 어디에서 왔고, 우리가 누구인지, 어디로 가고 있는지에 대하여 최대한 쉽게 풀어 설명한다. 처음 접할 때에는 엄청난 페이지 수와 진지한 글자들로 거부감이 들 수 있지만, 천만에! 전혀 그렇지가 않다. 첫 장만 읽어도 이 책이 놀랍도록 쉽게 쓰여 있다는 것을 알수 있다. 그리고 읽어 내려 갈수록 저자의 내공에 감탄하면서 흥미진진한 과학의 세계로 이끌려가게 된다.


모든 챕터가 흥미롭고 기억하고 싶다. 그래도 가장 인상적인 부분을 꼽으라면 '조상'에 관한 이야기다. 대멸종시기에서 힘겹게 살아남은 동물들은 날쌘 동물들이 아닌, 덩치 큰 공룡들이 아닌, 작고 힘없는 포유동물이었다. 낮에는 동굴 속에 몸을 피했고, 밤에만 살짝 나와 벌레나 새끼 파충류들을 사냥하며 지냈기에 살아남을 수 있었던 것이다. 포유류가 일정한 체온을 유지하는 온혈동물인 것은 언제 어디서든 움직일 수 있어야 했기 때문이고, 큰 뇌를 가지게 된 것도, 감각이 발달하게 된 것도 끊임없이 눈치 보며 피해 다녀야 했기 때문이다. 결국 진화의 도약은 최강의 포식자가 아닌 약자에게서 일어난다. 살아남기 위해서는 변화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숨어만 지내던 약한 포유류는 시련을 뚫고 살아남아 이제 당당한 포식자가 되었고, 최고의 자리인 진화의 주인공이 되었다.


책은 과학지식을 통해 우리의 과거, 현재, 미래를 한눈에 펼쳐 보인다. 또한 자연과 인간의 미래를 예측하고 여러 가능성을 제시한다. 저자는 잘못 알고 있었던 과학적 진실들을 바로잡아주면서도 열린 자세로 학문을 받아들일 것을 당부한다. 과학은 객관적 사실을 다루는 것이지만 절대적이지 않은 역동성과 확장성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맞는 말이다. 현실을 과학을 통해 바라보면 지금까지 알던 세상과는 다르게 보이고, 가치에 대해서도 다른 견해를 갖게 된다. 그러나 그 어떤 지식도 단정은 금물이다. 다만, 과학적 사고로 일상을 합리적으로 풀어나가는 데 초점을 맞춘다면 지금의 불합리성과 많은 모순들에서 벗어날 수 있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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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 드롭
에쿠니 가오리 지음, 김난주 옮김 / (주)태일소담출판사 / 2024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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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에 보이는 모든 것이 낯설고 호기심을 자극하지만,

너무 두리번 거리면 볼품없다고 자신을 꾸짖는 면도,

함부로 영합하지 않으려고 자칫 비판적이 되는 부분도,

자신이 그 장소에 익숙하지 않다는 것을 들키지 않으려는 심리도,

그렇다고 익숙해질 리는 없고 익숙해질 수도 없다는 기묘한 기분도.

<여행 드롭> p111-112



나이가 들수록 취향이 변한다는 말을 몸소 경험하고 있다. 취미, 식성, 옷 입는 스타일 등 예전엔 관심도 없었던 것들이 눈에 들어오기도 하고, 절레절레했던 것들이 좋아지기도 한다. 예컨대 새로운 환경에 쉽게 지치는 스타일이라 여행을 싫어했는데 최근에는 문득 여행 가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곤 한다. 물론 실행으로 옮기는 일은 거의 없지만 그런 생각이 든다는 것만으로도 나에겐 큰 변화다. 일본 작가들에 대한 생각도 달라졌다. 심심하게만 느껴졌던 일본식 힐링 영화나 에세이를 요즘엔 적극적으로 찾아보고 있다. 소박하고 차분한 이야기만으로도 충분히 진한 감정이 느껴지기 때문이다. 이렇게 변화하는 것들을 무시하지 않고 적극적으로 받아들이는 게 행복해지는 길이 아닐까 싶다.


<여행 드롭>은 에쿠니 가오리의 여행 에세이다. 그녀가 실제로 다녀온 여행담들과 여행이 주는 행복감들을 가벼운 문체로 산뜻하게 담아내었다. 책을 읽으면서 가장 좋았던 점은 여행을 통해 '새로운 나를 발견하자' 같은 진부한 메시지를 강요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더불어 여행에 도움이 되고자 하는 가이드 글도 보이지 않는다. 그저 지극히 개인적인 경험들, 짧고 통통 튀는 경험들에서 느낀 감정들을 무심하게 묘사할 뿐이다. 그렇게 군더더기 없이 경험 그대로 전달되니 이야기마다 웃고 울며 기쁘고 황홀하다.


책의 에피소드들은 여행이 주는 긴장감과 자유로움, 낯섦과 익숙함 등을 모두 긍정하게 느낌으로서 모든 경험들이 소중하다는 것을 깨닫게 해준다. 작가는 로망과 설렘으로 여행을 찬양하기보다 안정되고 편안한 내 집도 좋지만 벗어나겠다는 용기를 내보면 지금껏 느끼지 못했던 것들을 체험할 수 있다며 내 눈높이에 맞게 여행을 공유한다. 이렇게 애써 강요하지 않고 가볍게 '내 삶에 적용해 보면 어떨까'라는 생각이 들게 하는 글들이 무척이나 매력적으로 와닿았다.


책 속 가장 끌렸던 여행은 당일치기 여행이다. 당일치기의 거리와 시간은 각자 정하기 나름이므로 낯선 옆 동네가 될 수도, 멀지 않은 숲과 바람이 있는 곳일 수도, 어릴 적 살던 동네 일수도 있다고. 맞는 말이다. 탈일상적인 느낌이 드는 곳이라면 어디든 좋다. 일단, 늘 다니던 마트 말고 새로운 마트를 가보는 것으로 시작하자. 그다음엔 자전거 코스를 바꿔보는 걸로. 이렇게 조금씩 낯선 것들을 접하다 보면 안 보이던 것들이 보일 것이고, 기존의 것들에 대한 애정도 더욱 커질 것이다. 행복은 늘 곁에 있음을 책 속에서 다시금 발견한다. 일상의 지루함을 이겨낼 수 있는 힘은 역시 관점의 변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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