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 드롭
에쿠니 가오리 지음, 김난주 옮김 / (주)태일소담출판사 / 2024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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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에 보이는 모든 것이 낯설고 호기심을 자극하지만,

너무 두리번 거리면 볼품없다고 자신을 꾸짖는 면도,

함부로 영합하지 않으려고 자칫 비판적이 되는 부분도,

자신이 그 장소에 익숙하지 않다는 것을 들키지 않으려는 심리도,

그렇다고 익숙해질 리는 없고 익숙해질 수도 없다는 기묘한 기분도.

<여행 드롭> p111-112



나이가 들수록 취향이 변한다는 말을 몸소 경험하고 있다. 취미, 식성, 옷 입는 스타일 등 예전엔 관심도 없었던 것들이 눈에 들어오기도 하고, 절레절레했던 것들이 좋아지기도 한다. 예컨대 새로운 환경에 쉽게 지치는 스타일이라 여행을 싫어했는데 최근에는 문득 여행 가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곤 한다. 물론 실행으로 옮기는 일은 거의 없지만 그런 생각이 든다는 것만으로도 나에겐 큰 변화다. 일본 작가들에 대한 생각도 달라졌다. 심심하게만 느껴졌던 일본식 힐링 영화나 에세이를 요즘엔 적극적으로 찾아보고 있다. 소박하고 차분한 이야기만으로도 충분히 진한 감정이 느껴지기 때문이다. 이렇게 변화하는 것들을 무시하지 않고 적극적으로 받아들이는 게 행복해지는 길이 아닐까 싶다.


<여행 드롭>은 에쿠니 가오리의 여행 에세이다. 그녀가 실제로 다녀온 여행담들과 여행이 주는 행복감들을 가벼운 문체로 산뜻하게 담아내었다. 책을 읽으면서 가장 좋았던 점은 여행을 통해 '새로운 나를 발견하자' 같은 진부한 메시지를 강요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더불어 여행에 도움이 되고자 하는 가이드 글도 보이지 않는다. 그저 지극히 개인적인 경험들, 짧고 통통 튀는 경험들에서 느낀 감정들을 무심하게 묘사할 뿐이다. 그렇게 군더더기 없이 경험 그대로 전달되니 이야기마다 웃고 울며 기쁘고 황홀하다.


책의 에피소드들은 여행이 주는 긴장감과 자유로움, 낯섦과 익숙함 등을 모두 긍정하게 느낌으로서 모든 경험들이 소중하다는 것을 깨닫게 해준다. 작가는 로망과 설렘으로 여행을 찬양하기보다 안정되고 편안한 내 집도 좋지만 벗어나겠다는 용기를 내보면 지금껏 느끼지 못했던 것들을 체험할 수 있다며 내 눈높이에 맞게 여행을 공유한다. 이렇게 애써 강요하지 않고 가볍게 '내 삶에 적용해 보면 어떨까'라는 생각이 들게 하는 글들이 무척이나 매력적으로 와닿았다.


책 속 가장 끌렸던 여행은 당일치기 여행이다. 당일치기의 거리와 시간은 각자 정하기 나름이므로 낯선 옆 동네가 될 수도, 멀지 않은 숲과 바람이 있는 곳일 수도, 어릴 적 살던 동네 일수도 있다고. 맞는 말이다. 탈일상적인 느낌이 드는 곳이라면 어디든 좋다. 일단, 늘 다니던 마트 말고 새로운 마트를 가보는 것으로 시작하자. 그다음엔 자전거 코스를 바꿔보는 걸로. 이렇게 조금씩 낯선 것들을 접하다 보면 안 보이던 것들이 보일 것이고, 기존의 것들에 대한 애정도 더욱 커질 것이다. 행복은 늘 곁에 있음을 책 속에서 다시금 발견한다. 일상의 지루함을 이겨낼 수 있는 힘은 역시 관점의 변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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