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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방
박완서 지음, 이철원 그림 / 열림원 / 2016년 7월
평점 :
정말로 오랜만에 박완서 작가의 책을 읽어보게 되었다. '자전거 도둑', '그 많던 싱아는 누가 다 먹었을까', '그 산이 정말 거기 있었을까' 등 정말 유명한 베스트셀러들을 많이 쓴 작가이기도 하고, 가슴 따뜻해지는 글들이 많아서 즐겨 읽었었다. 특히 박완서 작가 특유의 따뜻하면서 잔잔한 어투를 좋아했었다. 그래서 이번에 개정되어 나온 [빈 방]이라는 책도 많이 기대를 했었다. 이 책은 [님이여, 그 숲을 떠나지 마오], [옳고도 아름다운 당신]의 개정증보판이라고 한다.

[빈 방]은 1996년부터 1998년 말까지 대략 3년간 천주교 '서울주보'에다 그 주일의 복음을 묵상하고 쓴 짧은 글들을 모은 것이다. 한 장 반 정도의 분량의 짧은 글들로 구성되어 있다. 하나의 글이 굉장히 짧다 보니 읽는데 어려움이 없어 좋았다.
사실 나는 종교가 없다. 굳이 따지자면 불교라고 할 수 있지만, 누군가가 나에게 종교가 무엇이냐고 물어본다면 '무교'라고 대답하곤 한다. 그래서 종교와 관련된 책을 읽을 때는 조금 부담스러울 때가 있다. 특히 기독교나 천주교와 관련된 책은 더더욱 그렇다. 교회에 가본 것은 초등학생 때 교회에서 가는 수련회에 참가한 것이 전부이고, 성당에는 친구를 따라서 한번 가본 것이 끝이다. 무엇보다 성경을 제대로 읽어본 적이 없어서 깊이 있는 종교 서적을 읽으면 무슨 소리인지 너무 난해하게 느껴질 때가 있었다.
그런데 박완서 작가의 [빈 방]은 마치 수필집처럼 느껴졌다. 성경의 한 구절을 써 놓고, 그에 관련한 이야기를 풀어나가는 형식이다. 주된 내용은 천주교와 관련된 내용이었지만, 사람 사는 이야기, 사회와 관련된 이야기 등도 나와서 쉽게 읽을 수 있었다. 실제로 '서울주보'에 연재한 순서대로 엮은 책이라서 박완서 작가의 생각의 흐름을 따라가며 읽을 수 있다는 점도 좋았다. '천주교'와 관련된 책을 제대로 읽은 것은 처음이라 더 인상적이었던 것 같기도 하다.
"이틀 정도의 꽃샘추위를 이겨낸 꽃들은 마침내 껍질을 무너뜨리고 노란 꽃은 노란 빛깔을, 분홍 꽃은 분홍 빛깔을, 흰 꽃은 흰 빛깔을 바깥세상을 향해 토해내기 시작했습니다. … 꽃은 잎보다 훨씬 약하고 부드럽습니다. 그러나 겨울을 이기고 봄소식을 먼저 알려주는 일은 잎보다는 꽃입니다. … 주님, 오늘도 마음이 여리고 지위가 미소한 이달 사이에 먼저 임하시어 큰 찬미 받으소서."
박완서 작가는 50이 넘어서 천주교 신자가 되었다고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런 깊은 믿음을 가질 수 있다는 것이 놀라웠다. 책 [빈 방]은 천주교인 '박완서'에 대해서 조금 더 느낄 수 있었던 책이었다. 많은 것을 알고 느낄 수 있었던 책이다. 하지만 나는, 이 책을 읽으면서, 더 이상 새로운 책으로 만날 수 없는 박완서 작가가 그리워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