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언서 - 성서사십주간, 전정판
영원한도움 성서연구소 엮음 / 성서와함께 / 2008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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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마지막 사항은 유배 이후 유다의 처지를 이해하는 데 특히 중요하다. 성전 관계자들의 권한은 제의를관장하는 데 그치지 않았다. 주민들의 법적 또는 적어도 사회적 지위가 제의의 참석과 지원에 관련되어 있었기 때문에, 실제로 그들이 주민으로 존재할 수 있는 것은 사제들에게 달렸다. 그래서 사제직은 종교적 영역뿐 아니라 경제적, 정치적 영역에서도 막강한 힘을 발휘했다. 초기 페르시아 시대에 예루살렘 성전과 그 운용이 지닌 매우 독특한 중요성으로 인해 갈등이 야기될수밖에 없었다. 그때부터 갈등이 어떻게 진전되었는지보는 것이 예언 본문들을 이해하는 데 중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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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적으로 예언 저술을 수집하고 성문화하도록최초로 충격을 준 것은 유배 자체였다고 생각한다. 이=
사건 자체가 유배 이전 예언자들의 예고들이 정당함을 입증했고, 그래서 그들이 경멸의 대상에서 하느님E 친히 올바르게 보여 주신 존경할 만한 인물들로 바뀌ㅕ었다는 것이다. 또 그렇게 많은 유다인이 고향 땅으로부터 분리됨으로써, 유다 문화와 종교를 살아남게 하려면 어쩔 수 없이 민족 문학을 보전할 수밖에 없게ㅣ 되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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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배와 함께 시작한 예언자들의 메시지에서 가장 분명한 변화는 이스라엘과 유다에 닥칠 하느님의 심판에 대한 감각이 상실된 것이다. 학자들은 유배 이전예언자들이 심판 너머의 희망을 보았거나 그들이 예고한 심판을 피할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는 것에 계속동의하지 않는다. 그러나 유배 이전의 심판 메시지가전부였든 아니었든 간에, 그것이 예언자들의 가르침에서 중요한 부분이었다는 것은 의심할 여지가 없다.
아모스는 "내 백성 이스라엘에게 종말이 다가왔다"(아모 8.2)고, 호세아는 "내 눈은 연민 같은 것을 모른다"(호세 13.14)고, 이사야는 "그분의 진노는 풀리지 않아, 그분의 손은 여전히 뻗쳐 있다" (이사 9.11.16. 20)고말했다. 예레미야에서, 그리고 에제키엘의 초기 신탁에서 우리는 임박한 심판, 유배의 재난을 예언하는 동일한 메시지를 듣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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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예언서들을 성경의 전체 경전과 함께 해석해야 하 여는 규범적인 거룩한 저작물로 강조하는 것은 신선한제안이었다(차일즈 1979). 세대를 거쳐 이 책들이 보존되어 온 유일한 이유는 전체 책들이 정경 안에서 제시하는 의미에 있다. 이런 종류의 분석이 예언서들에 대해 역사비평적 연구가 쌓아 온 모든 진보를 무시한다고 비판하는 견해도 있다. 그러나 이러한 접근법을 제안한 사람들은 이 정경 비판이 그러한 진보들의 어떤것도 부인하지 않으며 단지 그것들을 적절한 관점에놓을 뿐이라고 주장한다. 이 접근법에 관한 논쟁은 아직 결론이 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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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경은 후기 예언서를 이스라엘 왕정에 관한광범위한 이야기 바로 다음에 배치한다. 후기 예언서는 단지 전기 예언서(신명기계 역사서) 다음에 놓여 있기 때문에 ‘후기‘라고 불린다. 이 책들과 그 책 이름이 유래한 예언자들)은 또한 ‘고전‘ 또는 ‘정경‘ 예언서(자)라고불리며, 심지어 부적절하게 ‘저술‘ 예언서(자)라고도들 불린다. ‘저술‘이라는 용어는 유배 이전 예언자들이 자ㅏ 신들의 말을 스스로 기록하지 않았기 때문에 부적절한 표현이다. 예언자들은 말하는 이들이다(아마도 유배중에 제2이사야가 기록된 말을 예언의 수단으로 사용하기 시작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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