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세기 해설서
최안나 지음 / 성서와함께 / 2018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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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점창세기 1,1-2,47에 나오는 우주 창조 이야기는 우리가 살고, 바라보고, 알고 있는 이 우주의 본질을 전한다. 하느님께서 말씀으로 세상 만물을 만드셨다. 존재하는 피조물 중에 사람을 가리켜 창세기는 특별히 신(神, 엘로힘)의 모습으로 만들어졌다고 알려 준다. 피조물은 하느님께서 만드셨기에 하느님 손길이 닿은존재이고, 인간은 하느님의 생명이 깃든 존재이다. 성경은 그것을 아주 단순하게 말한다. 하느님께서 보시니 ‘좋았다‘(토브). 하느님께서는 온 우주의 조화를 보시고는 ‘참으로 좋았다‘ (토브 머오드)라고 하신다. 그리고 하느님이 좋다고 하신 우주는 하느님과 함께 이렛날을 맞이한다. 하느님이 거룩하게 하신 시간(이렛날)에 어느 누구도, 그 무엇도 예외 없이 하느님과 함께 존재하니, 온 우주에 신성이 깃든다. 이것은 곧 우주에 깃든 하느님 현존을 가리킨다. 태초에 하느님께서 우주를 창조하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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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리시즘
로버트 배런 지음, 전경훈 옮김 / 생활성서사 / 2018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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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 신학에서는 하느님의 어머니인 마리아의 지위로부더 더 깊은 함의, 즉 교회의 어머니로서의 역할을 끌어냈습니다.
마리아를 통해 그리스도가 태어났고, 교회가 그리스도의 신비로운 몸이라면, 실제로 마리아는 교회의 어머니가 됩니다. 마리아를 통해 예수님은 믿는 이들의 마음속에 계속해서 다시 태어납니다. 그렇다고 해서 이러한 이야기가 마리아와 구세주를 뒤섞는것은 아니지요. 오히려 중재자이며 전구자로서 마리아가 지닌사명을 주장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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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리시즘
로버트 배런 지음, 전경훈 옮김 / 생활성서사 / 2018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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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마스 아퀴나스는 이러한 참행복의 완벽한 모범을 보고 싶다면 십자가에 달리신 그리스도를 바라보라고 말합니다. 그리고자신의 의견을 구체적으로 설명합니다. "우리가 참행복 (행복)을원한다면, 예수님이 십자가 위에서 경멸하신 것을 경멸하고 사랑하신 것을 사랑해야 한다."
물질, 쾌락, 권력, 명예, 이 네 가지 고전적 중독들 말고 예수님이 십자가 위에서 무엇을 경멸하셨던가요?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님은 부와 세속적 선에 대해 완전히 초연하셨습니다. 그분의 옷은 벗겨졌고, 십자가에 못 박힌 두 손은 아무것도 쥘 수없었지요. 그분은 쾌락에도 초연하셨습니다. 십자가 위에서 예수님은 가장 고통스러운 육체적 수난, 말 그대로 죽음에 이르는고통을 겪으셨지만, 극단의 심리적 고통은 물론 영적인 고통까지 겪으셨습니다. ("저의 하느님, 저의 하느님, 어찌하여 저를 버리셨습니까?")그리고 아무런 힘도 없는, 스스로를 방어하거나 움직일 수조차없는 지경에 이르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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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리시즘
로버트 배런 지음, 전경훈 옮김 / 생활성서사 / 2018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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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말씀에 어리둥절해진 이들은 그들이 언제 그토록 주님을홀대했는지 물을 것입니다. 그러면 주님은 이렇게 답하실 것입니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너희가 이 가장 작은 이들가운데 한 사람에게 해 주지 않은 것이 바로 나에게 해 주지 않은 것이다."(마태 25.45). 그리스도를 사랑하는 것은 그리스도가 사랑하시는 이들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매우 극적인 이 비유에 담긴 예수님의 의도는 우리를 나태와 안락으로부터 일으켜 세우고.
혼돈으로부터 끌어내시려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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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리시즘
로버트 배런 지음, 전경훈 옮김 / 생활성서사 / 2018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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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서 드러나는 두 가지 사랑의 상호 관계는 예수님의 가르침 전체에 내포되어 있습니다. 이 책의 다음 장에서는 이것에 대해 조금 더 형이상학적인 방식으로 자세히 살펴볼 것입니다. 여기에서는 하느님을 향한 절대적 사랑이 우리의 동지인 인류를 향한사랑과 서로 경쟁하는 관계에 있지 않음을 언급하는 것으로도 충분할 것 같습니다. 하느님은 여러 존재들 가운데 하나가 아니라,
유한한 세계의 실존을 가능하게 하는 바탕이시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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