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말씀의 묵상 안에는 그 어떤 것도, 심지어 나 자신에 대한 믿음조차 억지로 집어넣고 싶지 않다. 하느님께서 이미 믿음을 가지라고 하셨으므로, 믿음을 가지라는윤리적 권고를 덧붙이는 것은 별 소용이 없다. 그것은 충분한 믿음을 갖지 못한 것에 대한 양심의 가책만 불러일으킬 뿐이다.
나 역시 주의를 기울여 그런 말씀에 호흡을 맞춘다. 내가 숨을 내쉴 때 말씀이 나를 하느님께서 계시는 나의 내면 공간으로 인도한다. 니니베의 이사악Isaak von Ninive은,
묵상하는 말씀이 이루 형용할 수 없는 하느님 신비의 세계로 들어가는 문의 열쇠이자 그분만이 들어올 수 있는우리 내면의 열쇠라고 생각했다. 물론 묵상할 때마다 그고요의 공간을 감지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묵상 중에 간혹, 그것도 매우 짧은 순간 내 안에 완전히 다른 무엇이존재함을, 하느님 친히 내 안에 계심을 감지하는 경우가있을 뿐이다. 하지만 그런 짧은 순간의 인지가 내 안의 무엇을 움직인다. 내가 나를 다르게 체험한다. 나의 본질적존재와 만나며 깊은 곳으로 들어가게 된다. 그리고 평화가 흘러나오는 깊은 고요를 느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