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주족의 청제국
마크 C. 엘리엇 지음, 김선민.이훈 옮김 / 푸른역사 / 200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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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주족 통치자들이 (20세기 말의 여러 지도자들과는 매우 대조적으로)민족성은 정치의 안정적인 기반이 되지 못함을 알고 있었던 것은평가할 만한 일이다. 따라서 그들이 한인 사이에서 공개적으로 가장 자주 드러내었던 모습은 그들의 유가적 외양이었고, 만주족과한인에게 공평하다는 것을 강조했다. 그러나 우리가 이미 살펴보았듯이 통치자들의 ‘개인적인 생각은 실제 관행은 말할 것도 없고매우 다른 일면을 보여 주었다. 1730년 <대의각미록大義覺迷錄》을 출판하면서 옹정제가 이미 사망한 비판적 한인 지식인 여유량呂留良에대해 방어적인 입장을 취한 것처럼, 소수집단의 불안감이 겉으로드러나는 경우는 매우 드물었다. 이 사건에서 건륭제가 황제에 즉위한 지 2주일이 되지 않아 부친의 선언을 모두 철회하라고 명한것은 우연이 아니었다. 이 일은 자신의 이미지에 집착하는 청조 황실에 대해 너무 많은 것을 노출시켰다."

만약 만주족의 지배를 유지하고 만주족의 집단적 결합력을 잘 지킨 것이 청조 통치의 성공 요건이었다면, 그리고 청조의 통치가 사실 상당히 성공적이었다면(적어도 왕조가 거의 300년간 유지되었다는점에서 청조의 통치는 성공적이었다), 한화이론과는 반대로 만주족의민족성은 어느 정도 유지되었다고 결론 내려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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