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서 우리는 바울을 진지하게 읽는 모든 이가 만나는 문제와 맞닥뜨린다. 그리스어로 분명 ‘충성‘을 가리키는 한 단어가 바울이 좋아하는 단어 가운데 하나인 피스티스pistis다. 이 말은 보통
‘믿음‘으로 번역하지만, 종종 ‘신실함‘, ‘신뢰할 수 있음‘이라는 의미도 지니며, 당연히 ‘충성‘이라는 뜻도 담고 있다. 피스티스라는말은-믿는 사실은 물론이요 믿은 것 또는 믿는 행위를 가리키는말인 ‘믿음 belief‘이란 의미의 ‘믿음‘aith‘을 뜻할 수 있는데, 이 조그만 한 단어로 이미 아주 충분한 의미를 표현하는 것 같다. 그러나 피스티스는 어떤 진정한 믿음에 함께 따르는 개인의 헌신을 가리킬 수도 있었는데, 이 경우에는 예수가 이제 온 세상의 정당한주권자이신 ‘주‘이시라는 뜻이었다. 따라서 피스티스는 ‘성실‘이나
‘충성‘을 의미한다. 이것이 바로 카이사르(로마 황제)가 그 백성들에게 요구한 것이었다.
바로 그런 점 때문에 야고보와 베드로와 요한이 바나바 및 사울과 의견을 같이할 수 있었다는 사실에 더더욱 주목하게 된다. 성전은 정결을 의미했으며, 충실한 유대인에게) 정결은 보통 비유대인과접촉하는 것에 극도로 주의함을 의미했다. 바나바와 사울이 이미얼핏 목격했고, (사도행전에 따르면) 베드로 자신도 유대인이 아닌 고넬료의 집에서 목격한 이 일은 새로운 종류의 정결이 탄생한 것이었다. 새로운 자유였다. 새로운 성전이 세워졌다. 이전과 그 종류가 다른 새로운 정결이 탄생했다. 많은 혼란이 일어난 것은 당연했으며,
특히 장차 하나님이 베풀어 주실 구원 행위를 가장 열렬히 고대하던 이들은 아주 혼란스러워했다. 일부 성실한 유대인이 그런 점을지나치다 싶을 정도로 밀어붙이는 바나바와 사울에게 분개한 것도당연했다. 당연한 일이지만, 이 두 벗 역시 한 걸음도 물러서지 않은 채 자신들의 의견을 고수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