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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독한 시월의 밤
로저 젤라즈니 지음, 이수현 옮김 / 시공사 / 2010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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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잭 더 리퍼와 셜록 홈즈, 프랑켄슈타인과 드라큘라 백작과 늑대인간, 그리고 크툴루 신화까지.. 

환상문학의 클래식들을 한 작품에서 그것도 로저 젤라즈니의 손에서 볼 수 있는 소설..  

캐릭터는 고전 환상문학, 세계관은 러브 크래프트의 크툴루 신화에 많이 기댄 작품이다..

 

죽은 자들의 영혼이 돌아오는 날, 초자연적인 세력들이 활개를 펴는 날인 10월 31일.. 

그 날, 특정한 인물들이 특정한 장소에 모여  '문'을 열고 선주신들을 맞이하려는 개방자들과 이에 맞서는 폐쇄자들로 나뉘어 벌이는 게임이 소설의 전반적인 골격이다..  

소설은 그 중 폐쇄자인 잭(더 리퍼로 추정되는..)의 파트너인 명견 스너프의 일기처럼 작성되어있다.. 

결전의 날인 10월 31일까지 게임 참가자들을 파악하고 또 그들이 개방자인지 폐쇄자인지 가늠하고 그들의 파트너들과 정보를 공유하며 '문'의 장소를 계산하는 등의 일과들이 한 달에 걸쳐 기록된다..

딱 봐도 거대한 스케일을 자랑할 것 같은 소설이지만 그와 정반대로 아기자기한 맛이 일품인 소품이다..  

위에 언급한대로, 소설의 주요인물들은 위에 열거한 어마어마한 캐릭터들이 아닌, 스너프를 중심으로 마치 <황금나침반>의 데몬들을 연상시키는 다양한 동물들이다..  

개와 고양이가 적과의 우정을 나누고 그 밖에도 올빼미와 뱀, 다람쥐, 박쥐, 까마귀 등이 마치 인간처럼, 그것도 매우 영리하고 냉철한 인간처럼 서로 정보를 교환하고 심리전을 펼치는 양상이 흥미로우면서 또 한편으론 귀엽기까지 하다..^^ 

즉, 이 소설은 마법과 주술이 난무하는 환상소설이자 인간처럼 생각하고 행동하는 동물들이 정보전을 벌이는 일종의 우화이기도 하다..   

가벼운 내용에 짧은 분량이니만큼 부담없이 즐길 수 있는 소설이다.. 

하지만 그 짧은 분량이 아쉬울 정도로 갑작스럽게 끝나는 결말이 조금 쓸쓸했다..  

작품의 분위기가 잘 반영된 표지 일러스트와 중간중간의 삽화는 꽤 인상적이다.. 

아무튼 로저 젤라즈니의 팬은 물론, 고전 환상문학과 크툴루 신화의 팬, 더 나아가 환상소설에 문외한이더라도 개와 고양이를 좋아하는 분들이라면 만족할 만한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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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사 실프와 평행 우주의 인생들 민음사 모던 클래식 38
율리 체 지음, 이재금.이준서 옮김 / 민음사 / 2010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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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든 책이든 보기 전에 기대했던 것과 전혀 다른 작품들이 있다..

그게 실망으로 이어지는 경우가 대부분이지만 가끔 뜻밖의 수확으로 건져지는 경우도 있다..

나에겐 이 작품이 후자에 속했다..

책 뒷면에 적혀있는 정도의 줄거리만 알았을 땐 이 작품이 추리와 SF을 접목한 영리한 장르소설이겠거니 생각했다..

하지만 첫페이지 프롤로그를 읽고 조금씩 그 생각을 거뒀고 본격적인 사건이 일어나기 시작했을 땐 내가 이 책을 제대로 읽고 있는 건지 계속해서 의심하게 됐다..

 

책 중간에 이런 내용이 나온다..

 

어느 산책하는 사람 앞에 잔잔한 호수가 있다.

호수 수면은 그에게 익숙한 세상은 반사하고 그 기저에서 벌어지는 일들은 은폐한다.

커다란 나뭇가지가 수면 아래로 흘러가고 두 잔가지 끝만 각각 서로 다른 지점에서 물 밖으로 솟아 있다.

산책자는 그 잔가지들이 물 아래에서 서로 연결되어 있는 걸 알고 있다..

알지 못하는 사이에 그는 우연이 뭔지 이해한 것이다.

 

또는 이런 장면..

 

한 아이가 종이에 원 두 개를 그린다.

그리고 그 사이에 엄지와 새끼손가락을 대 두 원을 연결한다.

이 원들에게 그 아이의 손가락은 우연이다.

 

이처럼 우연은 우리 인생에 뜬금없이 비집고 들어오지만 우리는 그것을 꿰뚫어볼 여지가 없다..

형사 실프의 말처럼 우리는 그저 평평한 바탕 위에 있는 빨간색 작은 원에 불과하다..

 

삶에 존재하는 수많은 우연들과 그로 인해 생긴 예기치 못한 비극들..

우주와 만물의 기원, 시간의 본질에 대해 끊임없이 연구하고 확고한 신념을 가진 두 비범한 물리학자들도 자신들의 인생을 침범한, 작지만 매우 사악한 우연과 그것이 가져온 결과에 대해선 어찌할 바를 모른다..

 

형사 실프는 범인을 굳이 범행현장으로 불러들여 내면의 심판자에게 그를 맡긴다..

책상머리에 앉아서 우주와 삶과 만물을 연구해봐야 무슨 소용이랴..

자신들의 감정조차도 다스리지 못하는 것을..

결국 그들은 자신들 바로 곁에 있는 소중한 이들조차 떠나보낸다..

 

 

비록 다 읽긴 했지만 과연 제대로 읽은 건지 확신이 서질 않는다..

전형적인 문과타입인 내겐 생소한 물리학개념들이 난무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옮긴이의 말에도 언급됐듯이 문장들이 조금 낯설었다..

은유와 사유들이 어려운 물리학 개념들과 뒤섞여 문장이 길어지고 난해해지는 탓일 테다..

하지만 그것이 꼭 나쁘지만은 않았다..

물론 그런 난해한 문장들이 이 책을 더디게 읽게하고 완독한 후에도 책의 반도 이해 못한 것처럼 느끼게하는 주범이지만,

독특하고 풍요로운 은유들은 인물의 평범한 동작 하나, 단조로운 배경묘사 하나에도 생동감과 아름다움을 부여한다..

 

책의 구성과 표지도 꽤 마음에 들었다..

특히 깔끔한 흰색 바탕에 빨간색 사물함 문들이 나열돼있는 표지그림을 보며 수많은 평행우주들과 그중에서 우리들에게 유일하게 열려진 우주 하나를 무리하게 억지로 끼워맞춰 보았다..^^;

 

결과적으로 <형사 실프와 평행 우주의 인생들>은 처음 기대했던 종류의 작품은 아니었지만 그 안에서 생각 못한 것들을 볼 수 있었던 독특한 작품이었다..

기대치를 조금 조정한다면 충분히 즐길 여지가 있는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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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인자의 편지 - 제2회 네오픽션상 수상작
유현산 지음 / 자음과모음(이룸) / 2010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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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쇄살인, 처형, 범인의 편지 혹은 도발, 사건을 해결하는 형사와 기자, 둘의 로맨스..

범죄소설이나 헐리웃 스릴러 영화에서 많이 볼 법한 소재와 설정들이다..

하지만 <살인자의 편지>가 단순히 기존의 작품들을 차용하고 답습한다는 뜻이 아니다..

사건의 이면에 자리한 동기, 사건을 둘러싼 다양한 인물들과 또 그들을 둘러싼 현실 사회의 단면들이 마치 신문의 사회면처럼 겹겹이 포개어져 있다..

이른바 일본에서 말하는 사회파 추리소설과 같은 맥락이다..

하지만 옆나라 일본의 작품들에선 느낄 수 없는 밀착감이 상당하다..

단순히 한국이라는 배경적인 부분뿐만 아니라 우리가 매일 TV와 인터넷 기사로 접하는 사건사고들이 작품 속 세계에서 드라마를 가진 하나의 사건으로 다시 재현된다..

이는 "폭력의 막다른 끝에서 범인의 인격이랄까 악마성을 보아야 한다"는 작가의 말로 압축되는 이 작품의 주제 외에도 좀더 다층적이고 실질적인 한국사회의 환부를 들춘다..

연쇄살인이라는 큰 줄기의 곁에는 피해자들과 그들의 사연 또는 그들이 연루된 사건들이 여러갈래로 가지치기를 하여 위의 장점을 더욱 부각시키고 작품의 질을 더욱 풍요하게 한다..

이점은 작가의 십년 간의 시사주간지 편집자 경력때문인지 꽤나 심층적이고 사실적으로 그려졌다..

그 외에도 목격자라든가 피해자의 친지, 형사, 교수, 소방수 등 사건에 직간접적으로 부딫히는 여러 인물들에게도 그들의 작품 내 비중과 상관없이 개별적인 사연들을 부여함으로써 다양한 인간군상들과 한국사회의 단면들을 비춰준다.. 

자칫 어수선하고 산만해질 수 있는 부분이지만 적절한 분량분배와 이야기의 중심에 선 매력적인 인물들이 이를 방지한다..

위에 언급한 현실성과 시사성 외에도 추리소설의 본질이라 할만한 오락성 또한 매우 훌륭하다..

현실성에 기반한 다양한 직업군의 묘사와 사건해결 방식은 하나의 사건을 여러 시각으로 조명하여 읽는 재미를 안겨주고 그에 따라 변하는 화자의 시점이 작품의 결을 풍부하게 만든다..

또한 자세한 현장묘사가 긴박감을 더해 건조한 작품 분위기에 윤기를 더해준다.. 

단순히 범인을 잡고 끝나는 이야기가 아니라 그 사건이 여러 인물들에게 끼친 파장이 책을 덮은 후에도 서서히 몰려왔다..

책 말미에 작가와의 인터뷰도 실려있어 좀더 명확하게 작품을 이해할 수 있다..

한가지 아쉬운 점은 표지 디자인이 너무 가볍지 않나 하는 점이다..

삐뚤빼둘한 제목과 그 밑에 그려진 장난스런 일러스트와 진중하고 깊이있는 작품의 분위기가 어긋나는 느낌이 든다..

좀더 세련되고 묵직한 느낌의 디자인이었으면 어떨까 하는 아쉬움이 들었다..

 
밑줄- 세상을 한 번에 뒤집어놓을 순 없어. 우리는 인간이야. 인간에겐 날개가 없어.

         인간은 자신이 처한 조건 속에서 한 걸음씩 천천히 걸어야 해.

         그러다 보면 조금씩 나아지겠지. 그게 인간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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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라장 사건
아유카와 데쓰야 지음, 김선영 옮김 / 시공사 / 201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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줄줄이 쏟아지는 수많은 양질의 신간 일본 미스터리 소설들 속에서도 빛을 잃지 않는 본격 미스터리의 고전..

 반세기가 지난 작품임에도 여전히 빛을 발하는 <리라장 사건>은 한적한 별장과 그곳에서 벌어지는 연쇄살인, 현장마다 놓여있는 범인의 표식, 명석하지만 까칠한 탐정 등 본격의 큰 특징이라 할 요소들이 전면에 배치된 작품입니다..

하지만 이 점은 보는 이에 따라 양날의 칼이 될 수도 있겠습니다..

먼저, 본격의 팬이라면 수많은 복선들과 트릭, 줄지어 선 용의자들, 하나씩 늘어나는 힌트들이 살인사건이라는 '퀴즈'를 풀기에 더없이 짜릿한 재미를 줄 것입니다..

하지만 그렇지 않은 독자라면 단편적인 캐릭터와 다소 억지스러운 설정, 일방적인 플롯 등이 조금은 거슬릴 수도 있을 겁니다..

그러나 모든 소설들은 자신의 위치를 주지하고 거기에 걸맞는 역할을 할때 걸작이란 소리를 듣는 거겠죠..

그런 면에서 <리라장 사건>은 본격 미스터리의 본질을 잘 알고, 너무 과하거나 부족함 없이 그 역할을 훌륭히 해냈습니다..

오히려 단편적인 캐릭터와 설정, 플롯이 순수한 '퀴즈풀기'의 재미를 주기에 적절한 요소들이 아닐까 합니다..

조금 특이한 점은 탐정이 나오는 소설론 드물게 탐정이 극 마지막이 되서야 나온다는 점입니다..

극을 이끄는 인물은 유키 형사와 겐모치 경감이라는 인물인데, 

그들의 수사가 탐정의 추리보다 선행된다는 점만 봐선 경찰소설의 묘미도 기대할 수 있겠습니다만 그들의 역할은 사건을 푼다기 보단 이야기를 정리하고 진행하는 역할이 더 강합니다..

굳이 말하자면 홈즈보단 그 옆의 왓슨과 비슷하다고 볼 수 있겠네요..

사건을 푸는 인물의 역할이 미미하다는 점 다시말해, 그만큼 매력적인 캐릭터가 부재하다는 단점이 조금 아쉬었습니다.. 

그리고 작가가 인물들의 행동과 그로 인한 심경변화 등을 서술하는 방식이 단순히 제3자의 입장이 아니라 하나의 감정을 가지고 독자에게 이야기하는 듯한 느낌을 받았습니다..

이는 인물들의 성격을 극명하게 보여줄 뿐 아니라 불길하고 신경질적인 극의 분위기를 전달하는데 꽤 효과적입니다..

하지만 가끔씩 앞으로 일어날 사건을 직접적으로 암시하는 설명들도 덧붙이는데 독자에게 불안한 느낌을 주게 하려는 의도인지 모르겠으나, 오히려 긴장감을 떨어뜨리는 작용을 하기도 합니다..

 

본격 미스터리의 고전이라는 타이틀을 가지고 나온 <리라장 사건>은 그 이름에는 손색이 없는 작품입니다..

본격의 팬이라면 만족 할만한 다양한 복선과 단서, 트릭을 제시하고 명쾌한 해답도 보여줍니다..

하지만 고전은 그만큼 오래됐다는 걸 의미하기도 합니다..

지금의 눈에 비춰보면 너무나 익숙한 설정들과 그만큼 획기적이 못한 장치들이 눈이 높아진 현대의 추리 독자들에게 얼마나 먹혀들지는 미지수입니다..

 

p.s. -전체적으로 냉정하고 어딘지 모르게 가벼운 느낌마저 들었던 작품의 분위기였지만, 마지막 한줄은 오랫동안 기억에 남을 만큼 가슴을 저리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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