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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라장 사건
아유카와 데쓰야 지음, 김선영 옮김 / 시공사 / 2010년 10월
평점 :
줄줄이 쏟아지는 수많은 양질의 신간 일본 미스터리 소설들 속에서도 빛을 잃지 않는 본격 미스터리의 고전..
반세기가 지난 작품임에도 여전히 빛을 발하는 <리라장 사건>은 한적한 별장과 그곳에서 벌어지는 연쇄살인, 현장마다 놓여있는 범인의 표식, 명석하지만 까칠한 탐정 등 본격의 큰 특징이라 할 요소들이 전면에 배치된 작품입니다..
하지만 이 점은 보는 이에 따라 양날의 칼이 될 수도 있겠습니다..
먼저, 본격의 팬이라면 수많은 복선들과 트릭, 줄지어 선 용의자들, 하나씩 늘어나는 힌트들이 살인사건이라는 '퀴즈'를 풀기에 더없이 짜릿한 재미를 줄 것입니다..
하지만 그렇지 않은 독자라면 단편적인 캐릭터와 다소 억지스러운 설정, 일방적인 플롯 등이 조금은 거슬릴 수도 있을 겁니다..
그러나 모든 소설들은 자신의 위치를 주지하고 거기에 걸맞는 역할을 할때 걸작이란 소리를 듣는 거겠죠..
그런 면에서 <리라장 사건>은 본격 미스터리의 본질을 잘 알고, 너무 과하거나 부족함 없이 그 역할을 훌륭히 해냈습니다..
오히려 단편적인 캐릭터와 설정, 플롯이 순수한 '퀴즈풀기'의 재미를 주기에 적절한 요소들이 아닐까 합니다..
조금 특이한 점은 탐정이 나오는 소설론 드물게 탐정이 극 마지막이 되서야 나온다는 점입니다..
극을 이끄는 인물은 유키 형사와 겐모치 경감이라는 인물인데,
그들의 수사가 탐정의 추리보다 선행된다는 점만 봐선 경찰소설의 묘미도 기대할 수 있겠습니다만 그들의 역할은 사건을 푼다기 보단 이야기를 정리하고 진행하는 역할이 더 강합니다..
굳이 말하자면 홈즈보단 그 옆의 왓슨과 비슷하다고 볼 수 있겠네요..
사건을 푸는 인물의 역할이 미미하다는 점 다시말해, 그만큼 매력적인 캐릭터가 부재하다는 단점이 조금 아쉬었습니다..
그리고 작가가 인물들의 행동과 그로 인한 심경변화 등을 서술하는 방식이 단순히 제3자의 입장이 아니라 하나의 감정을 가지고 독자에게 이야기하는 듯한 느낌을 받았습니다..
이는 인물들의 성격을 극명하게 보여줄 뿐 아니라 불길하고 신경질적인 극의 분위기를 전달하는데 꽤 효과적입니다..
하지만 가끔씩 앞으로 일어날 사건을 직접적으로 암시하는 설명들도 덧붙이는데 독자에게 불안한 느낌을 주게 하려는 의도인지 모르겠으나, 오히려 긴장감을 떨어뜨리는 작용을 하기도 합니다..
본격 미스터리의 고전이라는 타이틀을 가지고 나온 <리라장 사건>은 그 이름에는 손색이 없는 작품입니다..
본격의 팬이라면 만족 할만한 다양한 복선과 단서, 트릭을 제시하고 명쾌한 해답도 보여줍니다..
하지만 고전은 그만큼 오래됐다는 걸 의미하기도 합니다..
지금의 눈에 비춰보면 너무나 익숙한 설정들과 그만큼 획기적이 못한 장치들이 눈이 높아진 현대의 추리 독자들에게 얼마나 먹혀들지는 미지수입니다..
p.s. -전체적으로 냉정하고 어딘지 모르게 가벼운 느낌마저 들었던 작품의 분위기였지만, 마지막 한줄은 오랫동안 기억에 남을 만큼 가슴을 저리게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