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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인자의 편지 - 제2회 네오픽션상 수상작
유현산 지음 / 자음과모음(이룸) / 2010년 12월
평점 :
연쇄살인, 처형, 범인의 편지 혹은 도발, 사건을 해결하는 형사와 기자, 둘의 로맨스..
범죄소설이나 헐리웃 스릴러 영화에서 많이 볼 법한 소재와 설정들이다..
하지만 <살인자의 편지>가 단순히 기존의 작품들을 차용하고 답습한다는 뜻이 아니다..
사건의 이면에 자리한 동기, 사건을 둘러싼 다양한 인물들과 또 그들을 둘러싼 현실 사회의 단면들이 마치 신문의 사회면처럼 겹겹이 포개어져 있다..
이른바 일본에서 말하는 사회파 추리소설과 같은 맥락이다..
하지만 옆나라 일본의 작품들에선 느낄 수 없는 밀착감이 상당하다..
단순히 한국이라는 배경적인 부분뿐만 아니라 우리가 매일 TV와 인터넷 기사로 접하는 사건사고들이 작품 속 세계에서 드라마를 가진 하나의 사건으로 다시 재현된다..
이는 "폭력의 막다른 끝에서 범인의 인격이랄까 악마성을 보아야 한다"는 작가의 말로 압축되는 이 작품의 주제 외에도 좀더 다층적이고 실질적인 한국사회의 환부를 들춘다..
연쇄살인이라는 큰 줄기의 곁에는 피해자들과 그들의 사연 또는 그들이 연루된 사건들이 여러갈래로 가지치기를 하여 위의 장점을 더욱 부각시키고 작품의 질을 더욱 풍요하게 한다..
이점은 작가의 십년 간의 시사주간지 편집자 경력때문인지 꽤나 심층적이고 사실적으로 그려졌다..
그 외에도 목격자라든가 피해자의 친지, 형사, 교수, 소방수 등 사건에 직간접적으로 부딫히는 여러 인물들에게도 그들의 작품 내 비중과 상관없이 개별적인 사연들을 부여함으로써 다양한 인간군상들과 한국사회의 단면들을 비춰준다..
자칫 어수선하고 산만해질 수 있는 부분이지만 적절한 분량분배와 이야기의 중심에 선 매력적인 인물들이 이를 방지한다..
위에 언급한 현실성과 시사성 외에도 추리소설의 본질이라 할만한 오락성 또한 매우 훌륭하다..
현실성에 기반한 다양한 직업군의 묘사와 사건해결 방식은 하나의 사건을 여러 시각으로 조명하여 읽는 재미를 안겨주고 그에 따라 변하는 화자의 시점이 작품의 결을 풍부하게 만든다..
또한 자세한 현장묘사가 긴박감을 더해 건조한 작품 분위기에 윤기를 더해준다..
단순히 범인을 잡고 끝나는 이야기가 아니라 그 사건이 여러 인물들에게 끼친 파장이 책을 덮은 후에도 서서히 몰려왔다..
책 말미에 작가와의 인터뷰도 실려있어 좀더 명확하게 작품을 이해할 수 있다..
한가지 아쉬운 점은 표지 디자인이 너무 가볍지 않나 하는 점이다..
삐뚤빼둘한 제목과 그 밑에 그려진 장난스런 일러스트와 진중하고 깊이있는 작품의 분위기가 어긋나는 느낌이 든다..
좀더 세련되고 묵직한 느낌의 디자인이었으면 어떨까 하는 아쉬움이 들었다..
밑줄- 세상을 한 번에 뒤집어놓을 순 없어. 우리는 인간이야. 인간에겐 날개가 없어.
인간은 자신이 처한 조건 속에서 한 걸음씩 천천히 걸어야 해.
그러다 보면 조금씩 나아지겠지. 그게 인간이야.